[중앙포럼]루스벨트-대처-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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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뉴딜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철 (鐵) 의 여인' 영국의 마거릿 대처, 그리고 한국의 김대중 (金大中) 현 대통령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데 대해 의아해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개혁의 리더로, 각기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세 사람은 적잖게 닮았다.

세 사람은 전임자로부터 '대공황' 과 '영국병' , 그리고 '6.25 이후의 국난' 을 넘겨받았다.

그 위기상황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가 됐다.

셋은 모두 직업정치인이다.

전임자와의 관계단절에서도 셋은 닮았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후버의 불경기' 로 이름짓고 전임 후버 대통령의 무능을 부각시켰다.

대처는 노조파업으로 '중태' 에 빠진 영국 경제를 되살려놓기 위해 전임 노동당총리 캘러헌에 반기를 들었다.

"나는 합의를 이루어내는 정치인이 아닌 소신의 정치인" 이라며 노동당의 '컨센서스 정치' 와 결별했다.

DJ와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과의 관계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다.

배경과 시대적 여건이 엇비슷한 이 세 사람이 정작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 즉 '개혁의 리더십' 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루스벨트와 대처의 개혁은 서로 방향은 달랐다.

국가의 개입으로 미국 자본주의에 사회적.복지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진보주의적 사회실험' 이 곧 뉴딜이었다.

반면 사회주의의 '늪' 에서 영국 경제를 건져올려 기업의 자발적 창의와 시장경제로 자본주의를 복원시키는 '대전환' 이 대처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개혁 추진스타일과 전략에서 둘의 공통점은 두드러진다.

첫째, 둘은 이론가가 아닌 신념과 행동의 지도자였다.

주어진 위기를 이용해 개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이를 강하게, 신속하게 행동에 옮겼다.

뉴딜 관련 수십가지 입법과 행정명령의 대부분은 루스벨트행정부 출범 첫 1백일동안 쏟아졌다.

사회주의적 '연결고리' 를 차단하는 대처의 '일괄개혁안' 은 취임 한달도 안돼 실행에 들어갔다.

'준비된 지도자' 이자 타이밍을 중시하는 행동주의자였다.

둘째, 둘은 기회주의자나, 이해 (利害) 관계 조정자가 아닌 국가적 전략수립가였다.

협의는 하되 타협은 하지 않고, 일관된 신념을 마스터플랜이나 입법 등으로 제도화했다.

전쟁때를 제외하고 국가가 뉴딜 기간처럼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광범하게 개입한 적은 미국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대통령에 그처럼 많은 권한이 집중된 적도 없었다.

루스벨트가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이용했더라면 개혁은 십중팔구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대처는 하이에크의 '예종에의 길' 에 나오는 한 구절, 즉 "정부개입은 인플레나 경기후퇴.실업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할 뿐 그것을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다" 는 말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밀어붙였다.

셋째, 개혁의 추진은 측근 등 사람에 의한 인치 (人治)가 아닌 법치와 제도적 개혁을 중시했다. 개혁은 본질상 악역 (惡役) 이다.

따라서 기득권세력을 설득하고 저항을 최소화해야 한다.

개혁이념의 제도화를 통해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보여줄 때 반대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뉴딜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때의 '진보적 막간' 아닌 '미국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완한 완성과정' 으로 살아 있다.

개혁이 '개인화' 가 아니고 제도화될 때 항구적 생명을 갖는다.

넷째, 인기에의 집착이나 영합은 금물이다.

루스벨트는 부자나 자본가 등 보수계층의 반감을 샀지만 이들을 적대시하지는 않았다.

난롯가의 '노변대화' 를 통해 꾸준한 설득작업을 벌였다.

대처는 개혁 초기 영국 역사상 최악의 지지율과 폭동을 유발했다.

그럼에도 타협을 하지 않고 공권력과 대화로 저울질하며 노조측을 설득했다.

다섯째, 강력한 구심점을 갖고 핵심과제에 집중 (focusing) 했다.

전선 (前線) 을 여러개 만들거나 경제문제에 정치논리 등 다른 고려가 끼어들게 해서는 안된다.

당면한 국난극복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DJ개혁은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개혁의 리더십도, 추진주체도, 구심점도 안개속이다.

소모적 정쟁에 따른 시간과 국력의 낭비속에 국난을 맞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할 정도다.

전임정권의 실패를 즐기는 데 자족하지 말고 게임의 룰을 속히 만들고, 제도적 개혁의 기틀을 다져나가며 반대자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개혁은 역사의 '막간' 에 그친다.

'루스벨트와 대처를 보면 DJ가 보인다' 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변상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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