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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보고서로 재구성한 '클린턴,르윈스키와 외도'3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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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글은 미 의회에 제출된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신문윤리에 어긋나는 노골적 표현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이의 게재 여부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문제의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됐고 역사적 사건의 수사기록이라는 점에서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 싣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미국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가 보고서를 그대로 전재한 것을 비롯, 전세계 유수 언론들이 대부분 보고서 표현대로 다뤘음을 알려드립니다.

◇ 스캔들의 시작

르윈스키가 백악관 비서실장 사무실 인턴으로 들어간 것은 95년 7월. 약 한달이 지나면서부터 그녀는 백악관 직원환송회 등의 자리에서 클린턴에게 눈길을 주고 악수를 청하는 등 자신을 적극 소개했다.

◇ 첫 성접촉, 95년 11월 15일 = 연방정부가 파업으로 문을 닫은 둘쨋날인 이날 르윈스키는 백악관 직원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비서실장 방에서 잠시 클린턴과 단 둘이 마주친 틈을 타 상의 뒷부분을 살짝 들어올려 허벅지에서 팬티로 연결되는 속옷 끈을 보여주며 유혹했다.

그날 저녁 8시 화장실에 가던 르윈스키는 복도 옆 빈방에 혼자 서있던 클린턴과 마주치자 대통령에게 "반했다" 고 말했다.

클린턴은 웃으며 서재로 데리고 간뒤 "키스해도 좋으냐" 고 묻곤 "좋다" 는 르윈스키의 답에 키스했다.

약 두시간 뒤인 밤 10시쯤 그녀는 클린턴 집무실에 혼자 남았고 클린턴이 그녀에게 다가와 다시 "서재로 가자" 고 했다.

두 사람은 불꺼진 방에서 다시 키스했고 르윈스키가 재킷 단추를 풀자 클린턴은 그녀의 브래지어를 벗기고는 손과 입으로 젖가슴을 애무했다.

도중에 클린턴은 하원의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르윈스키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성기를 애무했고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오럴 섹스를 해주었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사정 (射精) 할 때까지 오럴 섹스를 해주겠다" 고 말했으나 클린턴은 "서로 더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안된다" 며 오럴 섹스를 도중에 그만두게 했다.

◇ 깊숙한 관계로

두 사람은 모두 열번의 성적 접촉을 가졌으며 이중 절반이 넘는 여섯차례의 접촉을 모두 초기에 가졌다.

- 95년 11월 17일 = 첫 만남 이후 이틀만인 이날 르윈스키는 행정부 파업사태로 야근을 하게 됐다.

옷에 피자가 묻어 화장실로 들어가다 클린턴을 만났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피자를 가져다 줄 것을 요청, 그녀가 피자를 가져오자 서재 뒤쪽으로 데리고 갔다.

클린턴은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오럴 섹스를 받았다.

- 12월 31일 = 서재에서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눴고 클린턴은 그녀의 스웨터를 벗겨 손과 입으로 애무했다.

르윈스키는 오럴 섹스를 해줬고 역시 사정 직전 그녀의 행위를 중단시켰다.

- 96년 1월 7일 = 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르윈스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르윈스키는 "혼자 있다" 는 클린턴의 말에 "함께 있어줄까요" 라며 백악관으로 찾아갔다.

오벌 오피스 (대통령 집무실)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화장실로 가 키스와 젖가슴 애무를 나눴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오럴 섹스를 해줄까" 라고 제안했으나 르윈스키는 "생리중" 이라며 거절했다.

오럴 섹스는 클린턴만 받게 됐다.

- 1월 21일 = 엘리베이터 옆 복도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오벌 오피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왜 나에 대해선 묻지 않느냐. 오직 섹스만 관심있느냐" 고 물었다.

클린턴은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고 미소로 대답했다.

- 2월 4일 = 두 사람은 처음으로 깊은 사적 대화를 나눴다.

전화로 사전에 약속한 두 사람은 클린턴의 개인 서재에서 만났다.

클린턴은 그녀의 롱드레스 단추를 차례로 풀어 그녀의 나신 (裸身) 을 감상하며 "무척 아름답다" 고 칭찬했다.

이어 손과 입으로 애무한 뒤 손으로 르윈스키의 성기를 애무했다.

처음으로 르윈스키의 속옷 깊숙이, 그리고 직접적 접촉이 이뤄졌다.

르윈스키는 그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

◇ 클린턴의 자제, 2월 19일

대통령의 날인 이날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낮에 백악관으로 찾아온 르윈스키에게 클린턴은 "더이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백악관에서 만나도 좋으나 그냥 친구로 지내자" 고 제의했다.

이날 클린턴은 그녀를 포옹하긴 했으나 키스하진 않았다.

◇ 성 충동에 무릎 꿇은 클린턴, 3월 31일

클린턴은 두 달을 견디지 못하고 르윈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오벌 오피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키스하고 성기를 손으로 자극했다.

그러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음부에 시가를 삽입했다가 빼내 물고는 "맛좋군" 이라고 말했다.

◇ 참모진의 절연 노력, 4월 17일

4월 5일 백악관 인사 담당자는 르윈스키에게 국방부로의 전출을 통보한다.

르윈스키가 클린턴을 지나치게 자주 만난다는 것이 백악관 참모진에겐 '경계대상' 이 돼있었기 때문이다.

이틀 뒤인 7일 그녀는 클린턴에게 전출 통보를 알렸고 클린턴은 재선 (再選)에 성공하면 르윈스키를 다시 백악관에 불러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둘은 다시 성적 접촉을 가졌다.

◇ 폰 섹스

이후 해가 바뀔 때까지 르윈스키는 클린턴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자주 르윈스키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둘은 폰 섹스를 나눴다.

클린턴이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애틀랜타로 떠나던 96년 7월 19일 오전 6시30분, 폰 섹스를 가진 뒤 "굿 모닝, 하루를 이처럼 멋지게 시작하다니" 라고 말했다.

이들은 연말까지 다섯번의 폰 섹스를 더 가졌다. 클린턴은 체코.볼리비아 등 외국 방문길에서도 폰 섹스를 즐겼다.

◇ 재회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뒤인 97년 초부터 두 사람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밸런타인 데이인 2월 14일 르윈스키는 워싱턴 포스트의 광고란에 M이란 이니셜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시구를 실어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해 2월 28일 클린턴은 주례 라디오 연설 녹음을 마친 뒤 11개월 만에 르윈스키와 성접촉을 가졌다. 이날 클린턴은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 이라며 모자 핀과 월트 휘트먼의 '풀잎' 이라는 시집을 선사했다.

이날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드레스를 벗기고 가슴을 애무했다.

클린턴은 "끝을 보게 해달라" 는 르윈스키의 청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오럴 섹스 끝에 사정했다.

르윈스키가 입고 온 푸른색 드레스의 히프와 가슴 부분에 정액이 묻은 것도 이날이었다.

◇ 마지막 밀회, 3월 29일

클린턴은 며칠 전 프로골퍼 그레그 노먼의 플로리다 집 계단에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은 상태로 서재에서 르윈스키를 만났다.

속옷을 입지 않은 르윈스키는 직접적인 성기 접촉을 원한다고 말해 두 사람은 접촉했으나 삽입하진 않았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이 사정할 때까지 오럴 섹스를 해줬다.

◇ 결별, 5월 24일

그해 4~5월께 클린턴은 르윈스키가 입이 무겁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르윈스키가 둘 사이의 관계를 어머니에게 털어놓았고 이 말이 클린턴 측근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그 측근이 클린턴에게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5월 24일 클린턴은 비서 베티 커리를 통해 르윈스키를 불러 결별을 통고했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결혼 초기에는 많은 정사 (情事) 를 가졌으나 40세가 넘고부터는 자제해왔다는 것, 르윈스키를 좋게 생각하며 매력에 빠졌었다는 것, 지금 상황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는 것 등을 설명했고 르윈스키는 울면서 관계를 지속하자고 호소했으나 이후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성적 접촉을 갖지 않았다.

사흘뒤 미 연방 대법원은 폴라 존스 소송과 관련, 현직 대통령이라도 민사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 결별 이후

르윈스키는 이후 백악관 일자리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클린턴이 만나주지도 않자 그녀는 97년 7월 3일 "백악관 일자리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간의 관계를 폭로하겠다" 는 편지를 클린턴 앞으로 보냈다.

이후 르윈스키는 생일선물 전달 등을 위해 클린턴을 계속 만났고 몇번은 성적 접촉을 갖기 원했으나 클린턴은 거부했다.

그녀는 97년 10월 6일 국방부 동료직원 린다 트립 (후에 르윈스키의 말을 몰래 녹음한 여성) 으로부터 클린턴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워싱턴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격분한 르윈스키는 클린턴의 비서 커리를 통해 클린턴에게 사죄할 것과 새 일자리를 구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르윈스키는 뉴욕 유엔본부에 일자리를 갖기로 하고 인터뷰까지 마쳤으나 마음이 변해 스스로 그만뒀다.

이후 르윈스키는 트립을 만나 자신의 말이 녹음되는지도 모른 채 클린턴과의 관계를 털어놓았고, 스캔들이 세상에 터져나오면서 르윈스키와 클린턴은 차례로 폴라 존스 소송의 증인으로 불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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