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교통사고 처리…아내가 4년추적 남편 한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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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여보, 우리가 결혼한지 10년째 되는 해예요. 저승에 계신 당신에게 이렇게 기념선물을 드리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

경기도성남시분당에서 중고서적 판매를 하는 이정옥 (李貞玉.36.여) 씨는 9일 네살짜리 막내딸과 남편의 영정을 끌어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통사고로 숨진 남편이 뒤집어쓴 가해자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지난 4년동안 기울여온 노력이 결실을 본데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李씨가 성남경찰서로부터 남편 朴정섭 (당시 32세.배관공)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것은 94년 4월 6일. 이날 오전 3시쯤 분당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 편에서 오던 13t짜리 탱크로리를 들이받아 차가 불타는 바람에 숨졌다는 것이었다. 당시 막내 딸을 임신하고 있던 李씨는 가까스로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갑작스런 충격에 몸져 눕고 말았다.

상대방 운전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경찰의 사고조사 결과만 믿고 생계대책에 막막해 하던 李씨가 남편의 사인규명에 나선 것은 우연하게도 꿈속에 나타난 남편의 말 한마디였다.

"사고후 한참 지난 어느날 꿈에 나타난 남편이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았다' 고 말하더군요. " 李씨는 그제서야 정신을 추스르고 목격자 확인에 나선 결과 사고현장을 정리한 성남시 미화원으로부터 "유리조각 등으로 보아 朴씨의 차가 중앙선을 넘은 것같지 않다" 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李씨는 미화원의 증언을 토대로 그해 9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탱크로리 운전사 蔡모 (37) 씨를 고소했으나 기각당했다.

그러나 남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李씨의 노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변호사로부터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가해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서울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다행히도 담당 재판부는 李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고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사고 현장 검증을 실시하는 등 실사 끝에 96년 6월 "탱크로리가 전방 좌우를 살피지 않고 안전지대를 침범해 일으킨 사고" 라는 판단과 함께 蔡씨의 보험사가 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탱크로리 운전사 蔡씨측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지난 5월 대법원에서 같은 내용의 판결이 확정됐다.

蔡씨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던 검찰도 민사소송이 진행됨에 따라 지난해 10월 중앙선을 침범해 朴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蔡씨를 기소, 2년6개월의 금고형을 구형했다.

결국 가해자 蔡씨는 오는 25일 형사소송 판결을 앞두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李씨에게 합의를 요청해왔다.

4년여에 걸친 힘든 투쟁이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어린 세 딸이 아빠를 찾을 때면 눈물바다를 이루곤 했다" 는 李씨는 "이제야 비로소 남편의 누명을 벗기게 돼 기쁘다" 며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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