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위기의 자영업 대책, 발상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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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나마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책 입안의 사정거리 안에는 들어와 있다. 이에 비해 자영업자들은 정책 및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경제위기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사실 경제위기 이전에도 자영업자 수는 점진적인 감소 추세에 있었다. 10년 전 38%였던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해 중반에 이미 31%로 줄어들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급진전된 세계화 등의 결과다. 대형마트, 소매유통 체인의 대거 등장에 따른 동네 소매점포의 감소 등이 그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0% 내외)보다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의 자영업 비중이 기형적으로 비대화된 것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높은 국제경쟁력과 동전의 이면 관계에 있다. 즉 산업화 초기부터 외국 기업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제조기업들은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 결과 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은 빠르게 떨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남아도는 노동력을 흡수할 만큼 서비스산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제조업에서 배출되는 방대한 인력들이 근대화된 기업 형태의 서비스업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떠돌면서 자영업 부문이 지나 치게 팽창해진 것이다.

따라서 자영업 부문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지 지금처럼 급격한 몰락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영업의 이상 비대화가 그간 경제성장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산물인 만큼 어느 때보다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서비스산업은 2000년대 들어와서야 겨우 경제정책의 대상이 됐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 부문은 오랫동안 소외돼 왔다. 또 자영업이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에 비해 미비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온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득분배구조 악화와 중산층 감소라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자영업의 몰락을 방지하는 게 급선무다. 우리 사회가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소득분배가 빠르게 악화되면 사회통합은 물 건너 가고 성장잠재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영업은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사회통합이라는 중대한 사회경제 현안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따라서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처럼 저소득층에 대한 창업 지원,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 지원 서비스 같은 임시방편적이고 과거회귀적 정책으로는 현재의 난제를 풀기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이라는 관점에서 자영업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통 서비스업이라도 업태의 현대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증가시킬 여력이 얼마든지 있다. 또 자영업자 비중이 최근 빠르게 높아지는 운수·통신·금융·공공서비스 분야에서도 성장성을 높일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 이는 서비스업 발전을 통해 경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진국들의 성공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영업을 제대로 발전시키면 우리 경제생태계의 가장 역동적인 부문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