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사정 스타일]'준비된 개혁메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DJ)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보낸 뒤 비로소 강도높은 정치권 사정에 나서고 있다.

기업.금융→행정부.공기업→정치권 개혁이라는 단계적 개혁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집권 초기부터 전격 사정을 감행했던 김영삼 (金泳三.YS) 대통령 때와는 그점에서 대조적이다.

정치권 물갈이를 요구하는 여론 형성을 끈덕지게 기다리는 것은 金대통령 사정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여론 활용은 YS가 즐겨 쓴 방식이다.

DJ는 목표.방법.시기를 따지는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사정효과는 DJ.YS때 모두 마찬가지다.

◇ 형평성 의식 = 金대통령은 최근 사정 당국자에게 "설사 내 자식이 연루됐더라도 예외를 두지 말라" 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치적 대선배였던 정일형 (鄭一亨.작고) 박사의 아들인 정대철 부총재를 읍참마속 (泣斬馬謖) 한 의미는 가볍지 않다.

반면 YS의 초기 사정은 박태준 (朴泰俊).박철언 (朴哲彦) 씨 등 주로 과거 정적을 향해 겨눠졌다.

물론 지금의 야당 의원들도 자기들을 위주로 한 '표적 사정' 이라고 주장하고 정대철 부총재건을 '끼워넣기' 라고 평가 절하한다.

◇ 사정목표.시기 = 金대통령의 사정 목표는 정치개혁이다.

정치권 사정과 야당의원 영입은 정치개혁 목표를 위한 2대 수단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정치개혁은 불신받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퇴출을 의미한다.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대야소 (與大野小) 만들기도 사정의 중간 목표다.

"국민의 70% 이상이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 정치안정을 요구한다" 고 말했다.

이에 반해 YS는 현역 정치인뿐 아니라 행정부.군부내의 '잠재적 경쟁세력' 을 제거하는데 주력했다.

◇ 대외적 명분 = 金대통령은 정치권 사정과 경제회생을 동전의 양면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치권이 개혁돼야 경제회생과 다른 부문의 개혁에 탄력이 붙는다는 개념이다.

YS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해외투자자 등 국제여론에 따라 여당 의석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 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YS시절 하나회 척결이나 비리 정치인 사정은 문민정부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전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