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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눌린 외나로도 과학자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3호 35면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남 고흥반도에서 다리를 두 번 건너야 나오는 벽지 중 벽지, 외나로도 얘기다.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이 일대는 요즘 긴장감과 기대ㆍ허탈감 등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오는 30일로 예정됐던 위성로켓 나로호(KSLV-1) 발사가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최소 10일 정도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번이 다섯 번째 연기다. 지켜보는 사람은 속이 탄다. 지역주민들은 여름휴가 성수기와 겹쳐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전남도청은 발사 장면을 볼 수 있는 명당자리 23곳까지 선정해 홍보전단지를 돌렸다. 심지어는 해군도 외나로도 앞바다에 1만4000t급 초대형 수송함 독도함을 띄우고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속을 태우고 있는 사람들은 나로우주센터 과학자들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짝만 손을 대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풍선’처럼 긴장감이 최고조를 이루고 있다.

발사 당일 나로호가 당연히 하늘로 솟구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많다. ‘국가 대사를 앞두고 무슨 초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확률로만 보면 위성로켓 발사는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높다. 기존 사례를 종합해보면 성공 확률은 27%. 10번 발사한다 해도 세 번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우주 강국 미국도 첫 발사에 실패했다. 일본도 네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실패는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10여 년 전인 1996년 2월 중국의 장정 3호가 발사 직후 인근 마을로 추락해 주민 500여 명이 숨졌다. 70년 자력으로 첫 인공위성을 발사한 중국이 이 정도다. 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86년 1월 발사 직후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한 챌린지호가 그랬다. 발사 전 엔지니어 한 명이 고무패킹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발사를 미룰 것을 요청했지만 무시됐다. 발사 연기를 주저해서는 안 될 이유다. 나로우주센터에서 만난 한 과학자는 “발사 때 VIP가 오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와 관료주의가 과학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을 우려한 말이다.

위성로켓은 그 자체가 위험물이기도 하다. 2단 발사 추진체인 나로호만 하더라도 전체 무게의 90% 이상이 연료다. 중국 장정 3호 참사가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발사 2시간 전이면 반경 2㎞ 밖으로 모든 사람이 철수해야 한다. 제일 가까운 곳이라야 2㎞ 밖에 있는 통제소다. 언제든 있을 수 있는 발사 실패가 참사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외나로도 과학자들의 스트레스는 또 있다. 기술 이전을 막으려는 러시아 과학자들과 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나로우주센터에 와 있는 100명의 러시아인 중 20명은 무장한 보안요원들이다. 이들의 허락 없이는 나로우주센터 영내도 마음껏 다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이 “러시아가 만든 1단 발사체가 있는 조립동은 러시아 대사관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을까. 성공 부담감과 기술 독립의 이중 고뇌에 시달리고 있는 외나로도 과학자들을 위해서라도 위성 발사를 향한 국민적 관심이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위성로켓 발사국이 되기 위해 국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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