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스포츠] 이혁병 ADT캡스 회장, “직원들과 물에 빠져가면서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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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바나나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웨이크보드를 타고 날렵한 동작으로 강을 한바퀴 돌아온 이혁병(56) 회장이 물가로 헤엄쳐 나왔다. 춥지 않은지 물었더니 그는 껄껄 웃었다. “물속이 오히려 따뜻하고 좋습니다. 비 맞으면서 물놀이하는 기분 아시잖아요.”

이혁병 회장이 지난 8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청평연수원 인근 북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날 ADT캡스 직원 50여 명이 팀 빌딩에 참가했다. 이들은 각자 수준에 맞게 물놀이 기구를 타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ADT캡스 전체 직원 중에서 수상스키를 가장 잘 탄다는 이 회장은 직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함께 어울렸다.

이 회장은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스노보드와 스키를 타고, 봄·가을에는 승마·산악자전거 등을 즐긴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어울린다. 그는 “몸과 몸이 부닥치면서 직원들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군장교 출신인 그는 2002년 3월 캡스 최고경영자로 부임했다. 오자마자 노조 파업을 맞았다. “5월 말에 1000명이 넘는 노조원이 건물을 에워쌌습니다. 퇴근도 하지 못하고 일주일을 사무실 소파에서 보냈죠.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가 진단한 조직의 최대 문제점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였다. 보안업체이다 보니 기강이 엄하고, 명령에 죽고 사는 게 군대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직된 조직 문화 속에서 언로가 막혔고, 창의력이나 애사심이 생겨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 회장은 이런 분위기를 깨부수기 위해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 직원을 50명 단위로 나눠 1년에 한두 번씩 1박2일짜리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게 했다. 여름이면 청평 연수원에 모여 수상스키를 했다. 처음에는 ‘회장님’ 앞에서 멋쩍어 하며 쭈뼛거리던 직원들은 차츰 스스럼없이 함께 옷을 갈아입고, 몇 번씩 물속에 빠지면서 마음을 열었다. 7년째 꾸준히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이 회장이 얼굴을 모르는 직원이 없을 정도가 됐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조직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불황 속에서도 ADT캡스는 국내 보안시장에서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ADT 본사에서도 이 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10월 ADT 아시아태평양지역 마케팅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오전 11시30분에 스포츠 활동이 끝났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점심으로 얼큰한 닭볶음탕이 준비됐다. 이 회장이 말했다. “수상스키는 제게 단순한 스포츠 이상입니다. 직원들과 함께 물에 빠져가며 수면과의 마찰과 싸우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몸의 균형이 잡히면서 이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게 되죠. 제게는 삶도, 경영도 수상스키만큼이나 스릴 넘치고 짜릿합니다.”

춘천=정영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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