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너지는 민노총, 노사 화합의 새 길 모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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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기반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인천지하철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어 어제는 KT 노조가 조합원 과반수 투표에 95%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노총을 탈퇴했다. 조합원 2만8700여 명의 KT 노조는 현대차·기아차에 이어 민노총에서 셋째로 큰 단위노조다. 출범 14년 만에 민노총이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한때 주력 부대였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오래전에 이탈했고,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노조도 민노총 탈퇴 수순을 밟는 중이다. 핵심 근거지인 현대차 노조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현대차 산하 정비위원회가 민노총 탈퇴를 결의하는가 하면 전임 집행부가 총사퇴하면서 금속노조와 진흙탕식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민노총은 도미노 탈퇴에 대해 “자기 조합원들의 임금과 복지만 챙기겠다는 조합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민노총은 탈퇴 노조들의 성명서를 다시 한번 유심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공통적인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폭력적이고 소모적인 투쟁 만능주의” “현장을 외면한 정치 투쟁 일변도” “조합원 성폭행과 조직적 은폐에 따른 도덕성 위기” “정파 싸움과 헤게모니 투쟁에만 골몰하고”…. 국민들의 눈에 비친 모습도 마찬가지다. 민노총이 이런 일그러진 자화상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침몰을 면하기 어렵다.

노동운동은 기본적으로 대중운동이다.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설 공간이 없다. 한때 민주화 과정에서 민노총이 우리 사회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민노총은 정치 투쟁에 치우쳤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정규직 귀족 노조의 이익에만 집착하면서 고통 분담에 인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핵심 노조의 도미노 이탈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다. 따라서 민노총의 살길은 과거와의 단절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투쟁을 위한 투쟁’부터 포기해야 국민의 뇌리에 찍힌 강성 노조의 낙인을 지울 수 있다. 이제라도 다수의 국민이 반길 수 있는 새로운 운동 노선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민노총의 살길이요, 시대 정신에도 맞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