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총성 없는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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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6보 (96~111)]
黑.李昌鎬 9단 白.李世乭 9단

대국장인 귤림당 뒤편으로 귤밭이 있고 그곳에서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검토실은 사방이 툭 터진 정자 비슷한 건물에 차려졌다.

그곳에 탐라.백록.제주.백합 등 제주도의 수많은 기우회 사람이 모여든다. 마루 한쪽에 인터넷 중계를 위해 장비들이 놓여 있다. 조선의 기와 건물과 첨단 노트북이 바둑을 통해 만나고 있다.

이세돌9단이 대국장에서 나와 귤밭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도 근심을 풀고자 해우소(解憂所)에 가는 것이겠지. 그 모습이 하도 한가로워 도무지 승부의 긴박감이 전해지지 않는다.

바둑은 막 중반의 험로로 접어들고 있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이창호9단의 끝없는 노력으로 판 위에선 아직 한방의 포성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세돌9단은 판을 뒤흔들 틈을 노리며 어둠 속에서 표범처럼 엎드려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대로 끝내기로 직행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이창호9단이 중앙에 치중하며 102 같은 실리의 요소를 내주는 것은 계산서가 이미 나왔기 때문이란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렇더라도 102는 상당히 큰 곳이어서 백은 실리만 따진다면 균형을 회복하고 있다 (102를 소홀히 하면 '참고도'흑1,3을 당해 백은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문제는 중앙이다. 103,105를 선수하고 111로 두는 쉬운 수순으로 백△ 두점의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흑의 1집반-2집반 우세'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창호식의 '승착 없는 승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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