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연구비가 샌다]생명공학연구소 낭비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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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범적인 연구소로 알려진 생명공학연구소조차 연구비 누수는 심각했다.

'깨진 독에 물 붓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의 낭비현장을 가본다.

◇ 술값인가, 연구비인가 = 李모.玄모 책임연구원 등은 대전시유성구 J술집에서만 1년동안 최소 1천여만원의 연구비를 술값으로 지출했고, 지난해 11월 13일엔 1백44만원의 술값을 3명의 연구원들이 48만원씩 분배, 연구비에 계상했다.

李박사의 경우 96년부터 지난달까지 연구과제에서 집행한 회의비는 5천1백만원대. 유전자은행 朴모 (39) 실장은 3천9백만원. 행정직인 玄모 (39) 과장은 지난해 정책과제로 받은 1천만원중 6백만원을 회의비로 계상하는 등 모두 5천2백만원의 연구비중 50% 이상을 식대.주대가 포함된 회의비로 사용했다.

李박사는 "대중음식점으로 분류돼 문제가 없을줄 알았다" 며 "연구과제 성격상 딸린 연구원이 많아 상대적으로 회의비가 커졌다" 고 해명했다.

올해 유네스코에서 여성 과학자로 선정됐던 같은 연구소 유명희 박사는 지난해 4억원대 과제를 수행하면서 1백83만원만 회의비로 사용했다.

◇ 헛돈 쓰는 고가장비 도입 = 94년 일본정부개발자금 (OECF) 차관으로 연구소 전산화를 위해 도입됐던 1백40만달러 (당시 11억원) 의 주 전산기는 사용조차 해보지 못하고 폐기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전산실에서 확인한 주 전산기는 스위치마저 꺼진 채 방치돼 있었고 함께 구입했던 대당 1백만원대 단말기 60대 역시 한번도 쓰지 않은 채 일부는 포장째 버려져 있었다.

전산실 관계자는 "제대로 이용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계획없이 도입돼 PC로 가능한 인터넷 전자우편에 사용했을 정도" 라고 말했다.

◇ 연구비 중복 타기 = 이미 개발된 연구 내용을 일부만 바꿔 연구비를 이중으로 받는 사례도 밝혀졌다.

이는 부처간 네트워크가 부실한 점을 이용한 것. 유전자은행 朴모 실장은 지난해 정보통신부에서 3천만원을 받아 '민물고기 멀티미디어시스템' 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 과제는 생명공학연구소가 지난해 1~4월 4백80만원의 외부 용역비를 제공하고 이미 제작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 당시 위탁과제를 수행한 대덕대 강모 (37) 교수는 "朴실장 연구보고서에 나온 29종의 민물고기는 이미 자료화된 민물고기 사진과 각종 데이터가 똑같다" 고 말했다.

더욱이 朴실장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연구원으로 부인과 부인의 친구, 고졸 계약직 비서, 심지어 이를 감독해야 할 검사역까지 연구원으로 올렸다.

朴실장은 "기존 데이터에 낚시.요리 정보도 가미해 새롭게 만든 부분도 있다" 고 말했다.

◇ 껍데기뿐인 연구 = 국책과제로 1억3천만원이 들어간 '게놈정보 종합처리시스템에 관한 연구' 는 연구비만 낭비한 채 홈페이지조차 구축되지 않았다.

취재팀이 연구계획서와 정산서를 입수.분석한 결과 참여 연구원의 70% 이상이 비전문가들로 구성됐고, 하위 위탁과제가 없음에도 이에 대한 관리비 명목으로 4백20여만원의 연구비를 써 과기부로부터 환수당하기도 했다.

당시 평가에 참가했던 서울대 강현삼 (미생물학) 교수는 "1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쓰고도 미국 데이터를 그대로 연결한 부실한 내용" 이라고 말했다.

조모 (50) 기술정보담당이 95년 충남대 韓모 교수에게 1천2백만원의 연구비를 준 '임원정보시스템 (EIS) 구축' 은 내부 전산시스템조차 구축이 안된 상황에서 무계획하게 연구비를 지원, 무용지물이 됐다.

93년 4천5백만원짜리 '그룹웨어 구축에 관한 연구는 시스템 구축은 커녕 형식적인 보고서도 2년이나 늦게 나왔다.

◇ 나눠먹기 연수 = 지난해말부터 3개월간 세계은행 차관으로 일본에 기술연수간 崔모 (65) 박사는 정년을 6개월 앞둔 경우. 나머지 高모.崔모씨 등 50~60대 실.부장급뿐 아니라 행정직인 당시 조모 (50) 기획실장까지 기술연수를 받았다.

이들이 사용한 연수비는 개인당 1만5천달러 내외. 한 연구원은 "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간부들끼리 노인 해외유람단을 만들었다" 며 분개했다.

◇ 이름 빌려주기 = 韓모 (64.현 과학기술자문위원) 박사는 후배 연구원들이 외부 연구과제를 따낼 때 연구책임자로 이름을 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韓박사가 정보통신부 과제로 3천만원을 받은 '민물고기 멀티미디어' 연구는 같은 연구소 후배인 朴모 실장이 실제 과제를 수행했다.

이는 연구과제 선정 때 서류심사에 그쳐 업적이 많거나 저명한 연구원을 내세우면 그만큼 유리하다는 것을 이용한 수법. 이에따라 정보통신연구관리단은 지난해부터 실질연구에 50%이상 참여하지 않는 연구원에게 과제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 감사의 실종 = 연구비 낭비가 계속됐지만 과학기술부 및 감사원 감사는 물론 내부감사에서 한번도 지적되지 않아 형식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연구소내 尹모 (55) 검사역은 오히려 연구비 유용을 눈감아줬다.

96년 李모 부장이 60만원대 오디오를 연구비로 샀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직원이 검사역에게 영수증 처리의 부당함을 지적했으나 오히려 이를 묵살했다는 것. 이 외에도 尹검사역은 없는 회의를 만들어 12번이나 서울출장을 가 공금 유용과 업무공백을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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