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천재도 노력해야 버틴다=젊은 시절 이종범은 타고난 체력만 믿었다. 그는 1993년 프로 데뷔 이후 쉴 새 없이 뛰었다. 이곳저곳 다치기도 많이 했다. 이종범은 홈런 타자가 아닌 탓에 수비와 주루에도 힘을 써야 했다.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야구 천재도 나이를 먹었다. 체력이 따라 주지 못해 성적이 떨어졌고, 지난 2년간 구단으로부터 은퇴를 권유받았다. 벼랑 끝에서 그는 후배들과 땀을 섞으며 기초체력부터 다시 만들었다.
이종범은 “올 여름을 잘 버티는 이유는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하체를 강화한 덕분”이라며 “하체는 운동의 시작이다. 또 나이 들면 가장 먼저 약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햄스트링(허벅지 대퇴 이두근) 부상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범현 KIA 감독도 이에 동의했다. 조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가장 열심히 했던 30대 선수가 이종범이다. 그만한 베테랑이면 부상이나 피로를 핑계로 하루쯤 쉴 만도 한데 이번에는 그런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때 만든 체력으로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팀 성적이 좋으면 여유가 생긴다. 마음이 편하니 내 기록도 좋아진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내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도 컸다”고 부연했다.
이종범이 2007년 타율 0.174에 그치자 KIA는 꼴찌로 추락했다. 그가 타율 0.284를 기록한 지난해 KIA는 6위였다. 팀이 하위권에 머물자 이종범이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이종범은 구단이 제시한 코치 연수 조건을 뿌리치고 선수로 남았다. 그리고 올해 자신과 팀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종범이 살아난 덕에 KIA가 상승세를 타고 있고, 그로 인해 이종범이 심리적·체력적 여유를 찾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젊었을 때 이종범은 누구보다 톡톡 튀는 야구를 했다. 그러나 볼혹의 이종범은 팀과 하나다.
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