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문학' 길위에서 싹튼 절망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일자리 찾아 보따리 싸들고 상경했던 꿈의 관문 서울역. 그렇게 올라와 한강의 기적을 불렀던가, 몇마리 용으로 날아오르게 했던가.

그러나 오늘 그들은 거덜나 그 광장으로, 지하로 몰려들고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한다' 며 소비문화에 조금은 들떠 있던 문학에도 이제 그런 노숙자의 슬픈 삶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 이원규씨는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노숙자, 그 무적 (無籍) 의 비둘기떼' , 소설가 임영태씨는 이번 주말 나올 '문예중앙' 가을호에 '나는 지금 노숙하러 간다' 를 발표했다.

3, 4일간씩 서울역과 서소문 공원에서의 노숙 체험을 현장성과 즉시성이 강한 르포 형식으로 담은 것. 이씨는 노숙자들을 서울역 광장을 서성이고 나는 또다른 비둘기떼로 묘사하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백 마리의 비둘기떼, 날개도 없이 털이 뽑힌 채 욕망의 제단 위에 바쳐진 무적자들이 구구구, 두려운 눈빛을 감추며 서울역 광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료급식차가 광장 한 모서리에 나타나는 순간, 수백명의 노숙자들은 먹이를 향하여 급전직하하는 비둘기떼처럼 순식간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어 일렬종대를 형성한다.

비애의 풍경으로 보기엔 너무나 엄숙하다.

○…짐승의 눈빛과 절망 혹은 권태에 젖어 이따금 벌이는 싸움만이 '악의 꽃' 을 피운다. " 그러나 그들이 정말 무한경쟁 시대의 필연적인 악의 꽃인가.

왜 한번도 더 많이 가져보지 못한 그들이 십자가를 져야만 되느냐고 이씨는 묻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제물이요 언젠가는 억울함이 폭발할 화약고로 보고 있다.

본바탕이 영락 없이 노숙 체질인 임씨는 그들과 함께 소주를 병째 나누며 그들의 눈빛에서 순진무구를 읽고 있다.

그리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법에 당하는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아프게 인정하고 있다.

새벽 찬 콘크리트 바닥의 신문지를 걷을 때마다 오늘은 제발 일이 주어지길 기다리며 새벽 인력시장을 향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오늘도 일이 없다.

누구는 국회의장에 선출되고 누구는 검찰에 소환되고 누구는 대망의 10승을 그들이 깐 신문지에서 올리고 있는데 그들은 일이 없다.

이 슬픈 사람들을 어찌할 것이냐고 임씨는 괴롭게 묻고 있다.

그 물음이 이제 거침없이 문학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60, 70년대의 빈민.노동문학에서 이 세기말에 이르러 노숙문학을 일궈야 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고 아프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