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타율에서 해방돼야 '선진국'가는길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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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건국 50주년을 맞아 두가지 논쟁이 일고 있다.

하나는 건국이냐 아니냐는 쟁점이고 또 하나는 제2건국이라는 말이 과거와의 단절, 계속성 부정이 아니냐는 시비다.

1919년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선 올해가 50주년이 아니라 79주년이다.

이는 기점 (起點)에 관한 논쟁이다.

더 논쟁적인 것은 대한민국 수립이 분단체제의 출발점이요, '반역사적' 이라는 좌파 (또는 반체제) 의 주장이다.

건국 50년 전후의 성취를 평가하기보다 분단의 원죄규명에 경사돼 있다.

건국은커녕 민족의 법통성을 대한민국에 두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2건국' 논쟁은 너무 정치적으로 제기되어 민망하다.

YS가 93년 취임사에서 이 말을 썼고 DJ가 최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두분의 발상과 어법이 마치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승만.박은식.이동휘.김구.박정희를 뛰어넘어 두분에게서 출발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두분의 의도가 어떻든 우리나라의 생존 조건이 반세기전 건국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명사적 차원의 새 도전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 용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는 좌파들이 제기하는 대한민국의 법통성 문제나 YS.DJ의 개인 의도를 포함한 제2건국 논쟁이 심화.여과.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이 나라 곳곳에 스며있는 정체성.정당성.정통성의 쟁점을 유행적으로 스치지 말고 본질적으로 천착해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각성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법통성.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정을 가져야만 미래개척에 필요한 자율 혁신 창조가 가능하다.

즉 거듭남을 위하여 꼭 필요한 자기성찰.자기확인이다.

지난 50년의 결과는 인간화.복지 자유.문화전통.삶의 질.국제공헌 등 그 어느 고급가치로 보아도 민족적 정체성과 정당성은 대한민 쪽에 있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쪽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왜 좌파의 주장이 젊은 세대에 열병을 앓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만주는 우리 땅 식의 허풍이 대중을 유혹하는가.

그것은 건국 50년간은 물론 개화, 근대화 1백20년간 우리는 세계적 보편적 이념, 체제, 정책, 집행의 자율적 선택이나 자율적 합의과정이 언제나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늘 우리 민족과 사회공동체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결정은 타율적으로 왔기 때문이다.

개화.식민지.분단.전쟁.시장경제.냉전종식, 그리고 최근의 IMF구제금융에 이르는 고비마다 형식이야 어떻든 실체는 타율적 외압으로 왔다.

이제 진정 제2의 건국이 되기 위해선 자율.자발.주체라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자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건국 50년 남북 모두 타율적 체제 선택에서도 대한민국의 성취가 크고 정통적인 것은 바로 이 시기가 세계 해양화 (海洋化) 의 난숙기였기 때문이다.

해양화시대 대한민국은 대륙국가도 반도국가도 아닌 섬나라였다.

이제 새 시대 '해양화의 세계화' , 세계의 다도해화 (多島海化)가 전개되고 있다.

정보화.지구촌화.개성화라는 문명사적 대변혁이 바로 이런 새 시대의 내용이다.

이 큰 새 문명 도전에서만은 타율에서 해방하자. 제2건국의 도전을 자율적.주체적으로 소화.극복.창조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그것은 질 (質).격 (格).연 (軟).선 (善) 의 길이다.

힘있는 나라가 돼야 하고 힘은 강 (强).경 (硬).양 (量) 규모의 힘이 아니라 연성 (軟性) 의 힘.두뇌.지식.정보.문화.예술의 힘, 그리고 도덕의 힘이어야 한다.

그것은 선진국이 돼 '선' 진국 ( '善' 進國) 으로 가는 길이다.

김진현(서울시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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