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연인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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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부인 재클린이 남편의 암살 직후부터 그리스 선박왕인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까지 4년간 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과 연인 사이로 지냈다고 전기 작가인 데이비드 헤이먼이 주장했다.

헤이먼은 13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판 기고문을 통해 재클린 여사와 케네디 전 상원의원 측근들의 인터뷰, 미 재무부 비밀검찰국(the Secret Service), 미 연방수사국(FBI)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헤이먼은 재클린 오나시스 여사의 전기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A Woman Named Jackie)』,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전기 『JFK』를 집필한 바 있다. 재클린 전기 집필 당시 헤이먼은 재키에게 로버트와의 염문에 대해 여러 차례 물어 보았지만 선뜻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재클린과 로버트 케네디의 연애 주장을 담은 헤이먼의 신간 『바비와 재키(Bobby and Jackie)』(Simon &ampamp; Schuster 펴냄)는 20일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이 책에 따르면, 두 사람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 3일 후인 1963년 11월 25일 저녁 워싱턴 근교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함께 다녀갔다. 두 사람은 형을 잃고, 남편을 여읜 슬픔과 아픔을 위로해주고 다독여주다 ‘시동생과 형수’ 이상의 관계로 변했다.

1950년 광산 재벌의 딸 에델 스케이클과 결혼한 로버트 케네디는 암살 사건 당시 8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64년 당시 38세였던 로버트와 34세였던 재클린은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로버트가 68년 대통령 후보 출마 결심을 하기 전까지 4년간 애인으로 지냈다는 것이다.

64년 1월 재클린이 살던 워싱턴 자택에 자주 놀러왔던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은 로버트가 재클린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특별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애정행각은 측근들의 눈에도 띄었고, 그 소문은 로버트의 부인 에설의 귀에 들어가 그 녀가 케네디 행정부 시절 주미 영국대사와 주미 프랑스대사에 사실 여부를 탐문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로버트가 그해 8월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발표했을 무렵, 재클린도 거주지를 뉴욕 맨해튼으로 옮겼다. 그들의 ‘로맨스’는 뉴욕에서 더욱 깊어갔다.

헤이먼은 당시 로버트의 운전기사가 그를 자정 무렵 재클린이 살던 맨해튼 아파트 인근에 내려주고, 이튿날 아침에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헤이먼은 당시 FBI 비밀자료에 “로버트가 여가시간은 늘 재클린과 보내고 있고, 확인할 수 없지만 같은 호텔 스위트룸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있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65년 재클린은 재정적 후원자이기도 했던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귀면서도 로버트와의 연인관계는 유지했다고 한다. 결국 재클린은 오나시스로부터 수차례 청혼을 받고, 로버트가 68년 3월 민주당 대선 경선 도전을 발표하면서 4년에 걸친 관계를 정리했다.

그녀는 당초 로버트의 대통령직 도전에 반대했다. 그도 형과 같은 운명을 밟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우려대로 그 해 6월 로버트 케네디는 암살됐다.

헤이먼은 또 재클린이 64년 2월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와도 두 차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브란도가 재클린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내가 그녀에 대해 읽고 들은 바로는 요염하고 관능적으로 보였지만, 그다지 성적이지는 않았다”며 “그녀는 내가 침대로 데려가기를 기다렸지만 내가 행동하지 않자 ‘오늘 밤 같이 보내겠느냐’고 먼저 물어왔다”고 말했다고 헤이먼은 주장했다.

헤이먼은 로버트와 재클린의 염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당시엔 요즘과 달리 언론에서 정치인의 사생활을 별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사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사화하는 것을 요즘보다 훨씬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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