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로또와 함께 사라진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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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저는 지방 소도시의

노래방 종업원입니다.

약혼녀가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도 미룬 채

월세방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네, 그놈의 34억원짜리

로또만 아니었어도

우린 내년이면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부부가 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깜빡하고 사지 않았다"

"친정에 두고 왔다"

변명 끝에

로또와 함께 사라진 그녀.

'인생역전'의 꿈을 꾸며

매주 부지런히 사던

로또복권이었습니다.

없이 살아온 우리가

돈 문제로 이렇게

다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법정까지 가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해라 해도,

그녀가 잘못을 뉘우치고

34억원과 함께 돌아오더라도,

저희는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찾아 헤매다 주저앉은

길바닥엔 클로버가 천집니다.

로또 1등의 행운아인

제 눈에도 네잎 클로버는

눈에 잘 띄지 않네요.

누가 그랬던가요.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세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저희가 바랐던 건,

저희가 감당할 수 있었던 건

거액의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이 아니라

행복이었나 봅니다.

천지에 널린 세잎 클로버 같은.

*최근 세금을 뗀 34억원의 로또 1등 당첨금을 손에 쥔 약혼녀가 함께 살던 약혼자를 버리고 잠적해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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