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달러당 146엔대 무너져…제2환란 전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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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달러당 1백46엔대가 무너진 것은 엔화의 날개 없는 추락을 예고하는 암울한 신호에 다름 아니다.

달러당 1백50엔을 둘러싸고 또 한차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겠지만 국제적 협조 개입이 없는 한 바닥이 확인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빠른 시간내에 바닥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다 (도쿄 미쓰비시 은행의 오쿠하타 아키라 외환자금부장) .엔 약세→위안 (元) 화 평가절하→동남아 국가의 연쇄적 채무 불이행→아시아 위기 재연이라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일본이다.

강도높은 부양책으로 9월부터 경기회복의 기미가 나타날 경우 파국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 경제의 조정 국면 진입과 맞물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경우 위안화의 평가절하 없이 아시아 경제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 경제가 조기에 회복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카이야 다이치 (堺屋太一) 경제기획청 장관은 8월 경기 동향에 대해 "바닥을 기는 혼미한 상태" 라고 11일 발표했다.

경제 정체보다 한단계 악화된 이 표현은 93년 거품경제 붕괴 이후 6년만에 다시 등장한 것으로 일본 경제의 '조기 회복론' 을 스스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크레디 쉬스 퍼스트 보스턴 은행 도쿄 (東京) 지점의 한 관계자는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이라며 "자민당의 정치적 리더십 약화로 불량채권 처리법안의 국회 통과도 늦어질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슈로더 재팬사 (社) 의 경제분석가인 앤드루 쉬플리는 "일 정부가 불량채권 처리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엔화가치는 연말까지 1백60엔대로 폭락할 수밖에 없다" 고 예견했다.

달러당 1백50엔대는 양쯔 (揚子) 강 홍수 피해까지 겹친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험수역이다.

외환 시장에서는 "미.일 양국이 엔화 약세를 방관할지 모른다" 는 관측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미.일.중국은 환율을 놓고 물고 물리는 관계" 라고 진단했다.

섹스 스캔들에 빠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주가 유지와 유동자금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 달러강세 노선을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본도 엔 약세를 방치함으로써 수출 확대로 경제 회생을 꾀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장성의 한 관리는 "엔 약세 저지보다 경기부양이 급선무" 라고 말했다.

다음달 6일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과 21일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환율 안정을 위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아시아 위기 재연이 초읽기에 몰린 지금, 세계 경제대전 (大戰) 을 막고 일본 경제의 회복이 확인될 때까지 미.일.중국 간의 국제적 공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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