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에 강경대응하는 오바마의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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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중국 방문 중에 북측에 대해 미사일을 쏘지 않으면 평양을 방문할 용의가 있고, 직접대화도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개탄했다. “(미국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는데 (북한이) 뺨을 때린 격이다”는 비유법까지 동원했다.

연설 직후 한 참가자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북한과 협상을 벌일 용의가 없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여기자 문제를 논할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relaxed) 않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북한은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전격 단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선 한국전 이후 유엔이 채택한 제재 결의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되는 ‘결의 1874’가 채택됐다.

뒤이어 미국은 이 결의를 위반하는 물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강남호’를 집요하게 추적했고, 식량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북 추가 식량지원을 중단했다. 또한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 계좌에 대한 동결 및 봉쇄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렇게 단호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은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 직후에 있었던 11월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패배한 전임 조지 W 부시 정권의 쓰라린 경험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부시 정부는 이 패배를 이라크와 북한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희망의 불씨가 그나마 남아 있다고 생각되는 북핵 문제에서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핵시설 ‘불능화’라는 모호한 개념에 바탕을 둔 북핵 문제의 미봉적 해결에 나섰다.

하지만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접근법이 북한에 “제재는 말뿐이고 미국은 결국 협상에 나온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었다고 본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직접외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른바 ‘불량국가’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을 금기(禁忌)시하기보다는, 직접 만나 복잡한 현안을 풀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도발행위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보다 ‘철저히’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의 특성상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보다 ‘정권안보’(regime security)가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자신의 정권안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철저한 압박을 가해야 협상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금융제재나 무기수출 봉쇄와 같은 북한 정권의 혈관을 조이는 미국의 독자 조치를 구체화하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 1874의 철저한 이행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 아래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핵우산 제공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덜어 주었다.

미국은 이제 중국이 화답할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그 시점은 7월 말로 예정된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강경대응이 지속될지 여부는 이번 미·중 대화에 중국이 어떠한 ‘선물’을 가지고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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