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김우중-정세영회장 정리해고 상반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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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실업이 급격히 늘어나면 중산층 몰락과 가족해체를 야기하고 종국에는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력 구조조정은 경기가 좀 나아진 후로 미뤄야 한다." (金宇中 전경련회장대행)

"진작에 정리해고제를 도입, 남아도는 인력을 그때 그때 정리했으면 지금처럼 기업이 도산하고 대량 정리해고를 하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초미의 현안인 정리해고 문제를 놓고 재계의 거물인 김우중 전경련회장대행 (대우회장) 과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서로 상반된 입장을 밝혀 주목되고 있다.

19일부터 22일까지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전경련 하계 세미나에서 두 사람은 각각 기조강연과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정리해고 자제와 강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두 사람이 직접적인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정리해고를 둘러싼 이같은 '논란' 은 재계 라이벌 그룹간의 시각차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낙관론 (金회장) 과 비관론 (鄭명예회장) 을 반영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鄭명예회장은 주제발표 후 기자들이 상반된 의견을 개진한 배경을 묻자 "그 사람 얘기는 그 사람 얘기" 라고 말해 시각차를 굳이 숨기려들지 않았다.

한편 세미나에 참석한 강봉균 (康奉均) 청와대 경제수석은 20일 초청강연에서 "합법적인 정리해고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도 동의했는데 막상 실천단계에 오니까 반발이 나오고 있다" 면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고 말해 鄭명예회장의 입장을 거들어 눈길을 끌었다.

康수석은 또 "이번에 정리해고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하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며 "현대자동차가 합법적인 절차로 정리해고를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고 역설했다.

경총 관계자도 "金회장이 대우그룹 회장으로서 개인적인 소신이라면 모르겠으나 전경련회장 자격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문제" 라며 "노동계가 총파업에 나서는 등 민감한 시기에 이런 논쟁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노동계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金회장 입장 = 지난 19일 기조강연 (IMF 조기극복을 위한 기업인의 책무)에서 "지금같이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불황기에는 고용조정 자체가 사회불안 요소가 돼 경제 전체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인들은 실업을 자제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세우는 서양식 사고방식으로는 인원을 줄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기업운영 방식이 될 수 있으나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이 있고 각자 다른 입장이 있는 것" 이라면서 정리해고를 반대했다.

金회장의 논리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1~2년간 열심히 노력하면 IMF체제 극복이 가능한 만큼 당장 어렵다고 '우리의 유일한 밑천' 인 인재를 잘라 버리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

◇鄭명예회장 입장 = 그는 20일 세미나 주제발표 (경영자의 역할과 리더십)에서 "그동안 잉여인력을 유지해 왔으나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짐에 따라 이제는 정리해고가 불가피하게 됐다" 고 말해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87년 6.29선언이 우리 경제를 암에 걸리게 한 시점" 이라면서 "그 이후 파업과 높은 임금인상, 정치혼란으로 경제가 붕괴됐다" 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사관계에 불법이 횡행하고 있는 데도 이를 방치하면 정부에 세금 낼 이유가 없다" 며 정부의 대응을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경제난국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며 IMF 극복까지 3~5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을 기초로 하고 있다.

鄭명예회장은 이날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정리해고 등을 통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근로의식 개혁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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