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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출신 아버지의 뿌리 찾으러 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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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53년 11월22일자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역에 막 내린 한국 남자아이의 사진을 실었다. ‘서울에서 오마하까지’라는 제목이 달린 사진 설명은 ‘최경환’이라는 다섯 살 소년이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에게 입양돼 이젠 ‘지미 레이노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6·25전쟁 당시 미군으로 참전했던 폴 레이노어(右)가 입양한 최경환군을 안고 있다. 레이노어는 입양한 아들에게 ‘지미’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미스티 에즈컴 제공]


“사탕과 장난감 총을 쥔 채 새벽 4시에 기차역에 도착한 이 다섯 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새 아버지인 폴 레이노어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게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의 내용이다.

이 기사가 NYT에 실린 데는 사연이 있다. 아이를 입양한 폴 레이노어가 25세의 미혼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양 허가를 받는 데는 1년이 걸렸다. 폴이 지미를 처음 본 건 경기도 의정부에서였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아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지미 레이노어의 아들인 케일렙(右)과 며느리인 미스티 에즈컴.

세월이 흘러 6·25 발발 59주년이 지난 지금, 지미의 아들인 케일렙 레이노어(29)와 그의 부인 미스티 에즈컴(31)은 서울에 와있다. 지난해 가을 한국에 도착했다. 이제 예순이 넘어 은퇴한 아버지를 대신해 한국에 혹 남아있을지 모르는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남편과 부인 모두 미국에서 신문기자로 일했지만 그만두고 서울에 왔다. 입양 서류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여러 곳을 수소문하고 있다.

부인인 에즈컴은 풀브라이트 재단(한미교육위원단)의 장학생으로 선정돼 미국의 한국인 입양사를 다룬 논문을 쓰고 있고, 남편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논문의 주요 부분은 시아버지인 지미의 이야기가 차지하게 된다. 몇 달 전 81세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폴은 생전에 손자 부부의 한국행을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한국에 오기 전 시아버지는 물론 당시 생존해 있던 시할아버지와 거의 매주 만나 증언을 들었어요. 남편과의 첫 데이트에서 입양 얘기를 듣고 극적인 이야기에 푹 빠졌거든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입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시할아버지께 어떻게 입양을 결정했느냐고 질문하니 ‘별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그 아이가 내 가족처럼 느껴졌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케일렙은 아버지가 올해 초 열흘간 서울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한국에 오는 것을 좀 어색해 합니다. 태어난 나라이면서도 떠나야 했던 나라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서울에 온 다음엔 아주 좋아했어요.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입양된 뒤론 한국을 방문한 적이 거의 없는데도 한국 산과 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우리가 놀라곤 했다”라고 전했다.

에즈컴은 시할아버지가 시아버지를 입양할 때의 비화도 소개했다. “미혼 남성이 입양허가를 받아내는 것은 미국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쉽진 않았다고 해요. 다행히 시할아버지가 교회를 통해 알게 된 분이 이승만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입양을 허가하는 친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도 상원의원과 언론에 호소해 겨우 허가를 받아냈다고 합니다. 당국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고 들었어요.”

그는 시아버지와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 속에 생겨났던 수많은 이야기가 잊혀져선 안 되잖아요.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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