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화, 아시아가 세상을 바꿉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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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명품 브랜드 MCM을 이끌고 있는 김성주(53) 성주D&D 회장은 말이 빠르다. 말이 빠르다는 것은 생각이 빠르다는 뜻이다. 게다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열정도 대단하다. 짧은 헤어스타일, 훤칠한 키(176㎝)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까지 겹쳐 마치 유격대 조교를 보는 듯하다.

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청담동 MCM HAUS에서 열린 ‘아트 인 런던 프로젝트(Art in London Project)’ 설명회 자리에선 여기에 각별한 애정까지 더해졌다. 7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2주간 런던에서의 글로벌 문화체험을 앞둔 연세대 여학생 40명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김 회장은 이들에게 10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행사다.

“나가서 보십시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문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아시아가 얼마나 떠오르고 있는지, 그리고 여성의 할 일이 얼마나 많고 중요한지 직접 느끼고 돌아오십시오.”

이 여학생들은 어떻게 이런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 걸까.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부터 짚었다. “심하게 말해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줄서기 문화입니다. 실력이 아닌 파당을 지향합니다. 학연과 지연으로 조직이 운영되죠. 하지만 지금은 국경 없는 나라에 사는 시대입니다. 실력이 중요하고 투명해야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요즘 여대생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나 보다. 몇 년 전 젊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사가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일을 시키면 못한다고 찔찔 울고, 도망가고, 돈 좀 더 주면 떠난다고도 했다.

“자기만 알고, 사회에 대한 책무를 너무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측에 항의했죠. 도대체 뭘 가르쳤느냐고. 학생을 잘못 길러내면 우리나라가, 우리 사회가 죽는다고.”

장학금을 학교에 기부하던 그가 아예 직접 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그리고 택한 것이 문화체험이다.

“이미 글로벌 세상입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합니까. 문화입니다. 비즈니스도 문화를 모르고서는 통할 수가 없어요. 문화가 새로운 자본입니다. 아트 이즈 뉴 캐피털(Art is new capital).”

그는 연세대 신학과 학생이었던 시절, 종교극회를 만들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오빠가 죽고 방황하다 들어간 곳이 신학과였습니다. 가서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극회를 만들었습니다. 제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무대 밑바닥 일은 안 해본 게 없습니다. 회사를 차리고 보니 직장도 무대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원들은 고객을 위한 액터, 액트리스잖아요.”

2주간의 문화체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런던 시내 주요 문화거점을 방문, 강의와 탐방, 인터뷰 등으로 빡빡하게 이어진다. 내셔널 갤러리, 경매장으로 유명한 크리스티, 테이트모던 박물관, 사치 갤러리,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런던 디자인 박물관 등을 방문해 담당자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다.

“겉만 보고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만나서 보고 들으면서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절실하게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번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의 전공을 보니 전기전자공학·수학·교회음악·식품영양·성악 등 다양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정치학을 전공한다는 강혜림양은 “평소 아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예술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고 싶다”고 말했다. 성악과 4학년 곽나리양도, 생명공학과 4학년 양혜정양도 뭔가 새로운 체험을 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김 회장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여성은 남성의 직업을 빼앗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무궁무진합니다. 실력과 안목을 가진 투명한 여성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제공=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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