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온도계' 장성급회담 진전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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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장간첩사건을 마무리할 유엔사와 북한간의 장성급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장성급회담은 동해안 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측의 자세변화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개창구. 남북연락사무소와 민간 차원인 적십자 접촉도 있지만 연락사무소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고 민간 차원인 적십자채널은 북한에 사과나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책임있는 자리는 아니다.

우리 정부는 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고, 금강산관광사업 등 남북경협 추진도 이 회담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면서 적당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16일 판문점에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은 예상대로 무장간첩사건을 전면 부인했다.

동시에 유엔사의 사과요구와 재발방지 약속을 일축했다.

이미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평통) 성명을 통해 무장간첩침투사건을 '남측의 조작극.비방모략' 이라고 우긴 바 있다.

한수 더 떠 지난달 속초 잠수정사건 당시 우리 정부가 구조작업을 지연시켜 승조원들이 사망했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속초에서 잠수정이 발견된 직후 북한이 우리 영해를 침범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사건 발생 12일만에 시체송환이 이뤄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치 분위기다.

현재로선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북한이 선뜻 고개를 숙이고 나올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장성급회담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사와 우리측 참석자가 북한의 침투사실을 증명하는 장비들과 사진들을 제시할 때 북한측 참석자들은 소란을 피우거나 딴전을 부리지 않고 진지하게 청취했다" 고 전했다.

또 북한측은 이날 "장성급회담이 긴장을 완화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유엔사에서 인정할 수 없는 것만 골라 의제로 삼아 우려된다" 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태도는 전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정중한' 반응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유엔사의 회의소집 요구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응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는 것. 7년만에 재개된 장성급회담에 대비, 군부의 대남전문가인 박임수 대좌를 장성급으로 승진 (예정) 시켜 참여시킨 점도 북측의 태도를 짐작케 한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난 타개를 위한 남북간 긴장완화 필요성, 명백한 도발 증거 등 이런저런 이유를 제시하며 "유엔사 - 북한간의 장성급회담을 북한이 쉽게 결렬시키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이 섣불리 장성급회담이라는 장을 버리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북한이 어느 정도의 수위로 사과나 재발방지 의사를 표시하는가에 따라 남북관계의 향방이 정해지겠지만 아직 전망하기는 이른 상태다.

하지만 사과 수위 등이 문제지 결국은 일정 수준내에서 우리측의 요구를 수용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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