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佛몽상가 자크 카렐망 '이 세상에 아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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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익숙한 물건에 다시 새 생명을 불어 넣을 수는 없을까. 프랑스의 탁월한 몽상가 자크 카렐망의 화두다.

바퀴가 달린 다리미 혹은 모래 대신 굵은 자갈을 넣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든 모래시계 등. 그에게 물건을 변조해 일상적인 쓰임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다.

부족한 여유와 상상 그리고 창의력을 찾는 길이며 상상력에 의한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탈출인 것이다.

최근 번역 소개된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상상' 에서 카렐망이 제시하는 일탈제품 (?) 들은 폭넓고 다양하다 (현실과미래刊) .

가구.주방.위생용품 등 가정용 물건에서부터 각종 레저용품과 동물들을 위한 제품까지.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에서도 소형 보트의 승선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옆으로 흔들리는 의자' 와 빨강은 사용중, 초록은 사용가능, 노랑은 물내리는 중을 의미하는 '신호등이 달린 화장실 문' 등에서 우선 그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중 비평가들이 감탄하는 대표작은 '마조히스트를 위한 커피주전자' .손잡이와 주둥이가 반대방향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같은 쪽에 나란히 달려있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마조히스트들은 커피를 따를 때마다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주전자는 마조히스트들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처구니 없을 만큼 기발한 발상들도 눈길을 끈다.

'너구리 세탁기' 는 깔끔하기로 유명한 북아메리카산 너구리를 드럼식 세탁기에 넣어두라는 것. 세탁기안에 빨래감과 먹이를 교묘히 섞어 너구리를 넣는 순간 스위치를 올리지 않아도 빨래는 곧 끝 (?) 이 난다.

'귀먹은 개를 위한 전등 호루라기' 는 바람이 불면 작은 발전기가 작동해 불을 밝혀줘 귀머거리 개라도 손쉽게 호출이 가능하며 '모자주걱' 은 구두주걱처럼 모자를 잘 쓸 수 있도록 만든 특별 고안품이다.

카렐망이 이같은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프랑스 셍테티엔에 있었던 병기.자전거 제작소의 제품 카탈로그를 본 후부터다.

거기서 대패.괭이와 갈퀴를 겸한 농기구, 소시지 속을 다져주는 원뿔통 등을 보고 상상력에 힘을 얻은 것. 그후 그는 엉뚱한 물건을 찾기 위해 벼룩시장과 골동품가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상상력은 새로운 날개를 달게된다.

현재 이 물건들은 프랑스를 포함한 각국의 미술관.화랑등에서 전시되고 있다. 또 이 책은 30여년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이래 전세계 언어권에서 번역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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