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3.아빠는 무서운조련사 아니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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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이번 투어 기간중 엄마.아빠와 죽 같이 다니고 있다.

부모님은 지난번 US여자오픈이 시작되던 주의 월요일 (6월 29일) 한국에서 오셨다.

첫 메이저대회인 미국LPGA챔피언십 우승 순간을 현장에서 못본 게 못내 아쉬워 두번째 메이저대회를 참관하러 오셨다 '붙잡힌' 것이다.

내가 "함께 지내는 게 너무 좋다" 고 자꾸 얘기하니까 그러면 올해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듀모리에 클래식 (캐나다 온타리오) 이 끝나고 8월초 일시 귀국할 때까지 동행하겠다고 했다.

아빠는 투어 기간중 코치 겸 응원객으로, 엄마는 카운슬러로 나를 톡톡히 돕고 있다.

그런데 대회 마지막날인 지난 12일 (현지시간)에는 묵고 있던 호텔 옆의 양식당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다 아빠에게 투정을 부렸다.

전날 한국의 한 관계자로부터 US여자오픈 우승 순간 아빠가 그린으로 뛰어들어간 것이 보기에 좀 그렇더라는 지적을 듣고 짜증이 나있던 차였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단 말이야. 왜 괜히 말이 나오게 하는 거야…. " 아빠는 순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당시는 정식 라운드가 아니어서 괜찮았단 말이여. 주최측에서 들어와 있어도 좋다는 허락도 있었어. 미국 선수 부모도 들어와 있었는디…. "

아빠는 상당히 '할 말' 이 많은 듯했으나 혹시 마지막 4라운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스러운지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셨다.

이럴 때의 아빠는 전혀 '무서운 조련사' 가 아니다.

당시 상황을 내가 모를 리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 최일류 선수가 되려면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행동과 매너 등도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해야 한다.

어쨌든 아빠에게 한바탕 투덜거리고 나니까 찜찜하던 마음이 상당히 후련해졌다. 아빠는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대회 기간중엔 낚시터용 의자를 하나 사서 들고다니며 4일 내내 내 경기를 따라다니셨다.

내가 10언더파로 한 라운드 최소타수 기록을 세웠던 날은 "골프란 건 '쿵따쿵따' (버디와 파를 왔다갔다 한다는 뜻) 해야지 '삐꾸삐꾸' (파와 보기를 교대로 하는 것) 하면 못쓴다니께. 오늘은 쿵따쿵따가 기가 막히더라고…" 라며 싱글벙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엄마는 아빠와 달리 성격이 매우 조용하다.

평상시에도, 대회장에서도 별 말이 없으시다.

매스컴에서 소감이라도 한마디 하라고 덤벼들면 질겁을 하고 도망가신다.

엄마는 그렇게 지내시는 분이다.

엄마가 이곳에 온 뒤로 나는 엄마와 호텔방을 같이 쓰고 있다.

밤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슬그머니 눈이 감기고, 그러면 깊은 잠에 떨어진다.

며칠전부터는 엄마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 같은 방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 3라운드때는 기침이 너무 심해 경기 관전도 못하셨다.

최종일에는 아예 감기약을 사들고 대회장에 나와 결국 우승을 지켜보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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