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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보호무역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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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하기 위한 이른바 ‘캡 앤드 트레이드(cap-and-trade)’ 관련 법이 최근 미국 등지에서 채택되면서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캡(cap)은 정부가 국가 전체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점차 줄여 나가자는 것이고, 트레이드(trade)는 각 기업이 대가를 지불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구매토록 하는 제도다. 장기적으로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단기적으론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화석연료 이용으로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가 점차적으로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생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세계 150여 개국 대표들이 올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 모여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방안을 논의키로 한 것도 그래서다. 이산화탄소 배출 기업과 정유회사 등에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과 장비를 갖추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은 최종 소비자가격에 포함된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해 비싸진 상품·서비스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어 상대적으로 값싼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산화탄소세’가 기업이나 가계로 하여금 이산화탄소 배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산화탄소세는 채택되지 않고 있다. 휘발유에 세금을 부과하는 각국 정부도 이산화탄소세 부과는 꺼리고 있다. 국민의 조세 저항 때문이다. 대신 각국 정부는 캡 앤드 트레이드 제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판매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비용 부담을 지우게 된다. 사실상 이산화탄소세를 부과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캡 앤드 트레이드 제도가 국제 교역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나라가 이 제도를 채택한다 해도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수준과 생산 환경의 차이로 이산화탄소 배출권의 가격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배출권 가격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결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권 비용이 낮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이런 차등 관세는 각국 정부가 지난 50년 이상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없애려 애썼던 보호무역주의의 부활과 다름없다.

이 문제에 대한 쉬운 해답은 없다. 하지만 서둘러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캡 앤드 트레이드 제도가 경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 봐야 한다. 도로와 항만, 심지어 학교까지 모든 것이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누구도 이런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 경쟁력의 차이를 관세로 상쇄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캡 앤드 트레이드 제도가 코펜하겐에서 채택될 경우 여기에 합의한 모든 국가는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을 위협하는 상쇄 관세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점에도 동의해야만 한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정리=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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