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화물터미널, 동남은행 합병으로 화의 불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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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일 오후 부산시사상구엄궁동 부산종합화물터미널 사무실. 직원 17명이 무거운 침묵 속에 한숨만 내뱉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던 동남은행마저 합병돼 회사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부도후 지난4월 부산지방법원에 화의 신청을 내놨다. 화의개시 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동남은행의 동의가 필요하다.

동남은행은 이 회사 금융권 빚의 68%인 7백50억원을 빌려준 대표 채권은행. 그래서 동남은행의 동의 여부가 이 회사의 생존여부를 결정짓는다. 터미널측은 그동안 동남은행의 동의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노재학 (盧在鶴.46) 이사는 "지난달26일까지 동남은행 임원들을 만나 화의개시 동의절차를 빨리 밟아 달라고 부탁했다" 며 "애쓴 끝에 이달초 동의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동남은행은 지난달29일 주택은행으로 넘어가 그동안 들인 공이 허사가 돼버렸다.

터미널 관계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주택은행을 상대로 힘겨운 설득작업을 해야한다" 며 "새 주인이 부도난 공기업을 구해줄 지 기대마저 하기 힘들다" 며 비통해 했다.

주택은행이 터미널의 채무를 인수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법원의 화의개시 결정은 기대하기 어렵고 이는 곧 터미널의 파산을 의미한다.

터미널 주차장에는 이날 7백여대의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었으나 좀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이 회사의 부도이후 일감이 없어 그냥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이다. 한 트럭운전사는 "일감이 없어 사흘째 트럭을 세워두고 있다" 고 말했다. 주차료를 아끼기 위해 터미널 바깥 도로에 화물차 50여대가 불법주차해 있기도 했다.

정부의 물류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터미널의 한 직원은 "너무 많은 부지를 비싼 값에 산 게 부실의 근본 원인이다" 며 "2백50억원으로 예상한 토지구입비가 3배가 넘는 8백여억원이나 들어갔고 이를 모두 빚으로 충당했으니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고 따져물었다.

盧이사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산종합화물터미널 같은 대규모 물류단지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운영방법 등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며 "시작은 시에서 했으나 결국 빚은 회사가 떠안아 부도낸 공기업이 되고 말았다" 고 하소연했다.

터미널 사무실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 1백여곳의 화물운송업자들도 터미널이 재기에 실패, 임대료 등을 받지못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산〓강진권.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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