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메카로 가는길'주인공 전경자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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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노인네가 무슨 낙이 있을까. 텃밭이나 얌전히 가꾸고 살면 그나마 봐주련만, 귀신딱지같은 자작 (自作) 조각들로 집안팎을 도배하다시피하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무리가 아닐 터. 3일부터 성좌소극장에서 공연중인 극단 독립극장의 '메카로 가는 길' 의 주인공 미스 헬렌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는 인물이다.

"한창 젊은 사람들에겐 이미 끝난 인생이라고 여겨질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더 절실해 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미스 헬렌을 변호하고 나선 이는 전경자교수. 카톨릭대 영문과교수.번역문학가로 활동하다 현재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 문명과 한국어 교육 책임을 맡고 있는 전교수의 헬렌에 대한 매료는 단순한 편들기를 넘어선다.

남아공 출신 작가 아돌 후가드의 희곡을 번역한 것은 물론이고, 무대가 마련될 때마다 직접 미스 헬렌을 연기하기까지 한다.

직업배우가 아닌 그의 연기이력의 대부분은 92년.95년, 그리고 이번의 '메카로…' 무대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 회교성지를 뜻하는 '메카' 는 극중에서 미스 헬렌의 세계이자 집을 의미한다.

하필 메카에 비유된 이유를 찾는다면 회교사원.낙타.올빼미 등 미스 헬렌의 조각작품이 지닌 비기독교적 분위기 때문일 터. 아돌 후가드는 인종차별을 고발한 '아일랜드' 등 사회성짙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지만 '메카로…' 에서 다루는 것은 한층 보편적인 인간문제다.

미스 헬렌의 자의식을 소중히 여기는 젊은 벗 엘사와 미스 헬렌에게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삶의 진정한 열정은 이해못하는 마리우스 목사. 둘이 대립하는 와중에 인생의 존엄성에 대해, 진정한 자유에 대해 잔잔하지만 힘있는 생각을 털어놓는 미스 헬렌의 모습은 전교수가 이 작품에서 느낀 매력을 짐작하게 한다.

세 배우와 연출자가 대학강당의 '선생님' 인 것도 방학에 맞춰 공연되는 이번 '메카…' 무대의 특징. 엘사 역의 공연예술아카데미 연기과 예수정교수, 마리우스 목사 역의 순천향대 영문과 이현우교수는 연기전공은 아닐망정 각각 '세종32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꾸준히 무대에 서 온 배우들이다.

연출은 상명대 연극과 박철완교수. 2시간30분 동안 배우들이 쏟아내는 열정에도 불구,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자체에 의미부여가 컸던 탓인지 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해석의 맛이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8월2일까지. 02 - 540 - 4629.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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