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아줌마 “법은 몰라 … 맘 편히 일하게만 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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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법이 처리되지 않아 70만여 명의 근로자가 해고될 위험에 처했다. 상당수 근로자는 이미 해고됐다. 정치권의 무능력과 노동계의 버티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비정규직 법의 2년 제한에 걸려 있는 근로자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자리를 달라”고 하소연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서수경씨(左)와 신명자씨는 “정규직 전환도 필요 없다. 그저 일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형수·조문규 기자]



“비정규직 보호법이 우리를 거리로 내쫓아”

사립대서 해고된 서수경씨 서수경(38)씨는 올 2월 명지대학교 교직원 자리에서 해고됐다. 대학 측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며 서씨를 비롯해 2년 이상 근무한 95명을 해고한 것이다. 서씨는 해고된 동료 19명과 함께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해고한 이유는.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나는 7년 전부터 계약직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뒤 2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일자리를 잃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며 만든 법이 오히려 우릴 길거리로 내쫓은 것이다.”

-현재 대학 측에 요구하는 것은.

“정규직 전환도 필요 없다. 우린 그저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안정적인 일자리, 그것뿐이다. 비정규직법만 없었더라면 무기계약 형태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비정규직법이 생겼다고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생각한 비정규직이 어디 있겠나. 비정규직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쓸 수 있는데 왜 비싼 돈 들여 정규직을 고용하겠나.”

-시행을 유예하는 게 좋은가.

“시행 유예든 4년으로 연장하든 언젠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장정훈 기자



“정규직 전환 바랐는데 … 아이들은 어떡하나”

보훈병원 식당조리원 신명자씨 서울보훈병원 식당조리원 신명자(37)씨는 올 5월에 회사에서 ‘6월 말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설마 했었다. 지난해 1월에 3~5년차쯤 되는 동료 8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연봉도 똑같이 받게 돼서 곧 정규직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신씨와 동료 23명은 30일자로 계약이 끝났다.

-지금 상황은.

“어제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오늘 내일 중에 해고될 것이다. 2006년 10월부터 여기서 일했고 2007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그해 7월 1일 재계약했다. 같이 일하는 조리원 60명 중 22명만 비정규직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이고 맞벌이를 해야 생활이 유지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다.”

-해고된다면.

“복직을 위해 투쟁할 거다. 해고 통지를 받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러 간 적도 있다. 서류를 쓰려다가 결국 2년 후에는 똑같은 신세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입사지원서를 찢어버리고 나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이 법을 만든 목적처럼 정규직으로 바꿔주는 거다. 하지만 당장 잘리면 안 되니까 유예는 최후의 선택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간 유예 후 다시 지금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제발 좋은 쪽으로 결정 나면 좋겠다.”

김은하 기자



“8월에 계약 연장 안되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 ”

마트 계산원 최모씨 최모(55·여·서울 강서구)씨는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 최씨는 “계약 만료 시점(8월)이 다가오면서 밤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말했다.

-언제 재계약을 하는가.

“2007년 8월 일을 시작했고 그때 2년 계약을 했다. 올 8월에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처음에 마트에 와서 일할 때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는 줄 알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 달에 140만원 정도 받는데 당장 8월에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남편 벌이만으로 먹고살기가 힘들다. 경제도 좋지 않은데 이곳을 그만두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정부와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국회에서 비정규직 계약 기간을 4년으로 늘릴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법이나 이런 것들은 잘 모르겠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맘 편히 일만 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서민들이야 정치든 뭐든 관심도 없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남았는데 회사에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이러다가 그냥 잘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고 불안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걱정인 사람이 많고, 생계가 급한 사람이 많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강기헌 기자



“직원 내보내고 다른 사람 뽑는 이런 황당한 일이 … ”

난감해하는 기업들 여야가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안을 합의할 것으로 믿었던 기업들은 “고용기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며 난감해했다. 기계 부품업체인 A사(경남 김해)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처리할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회사의 비정규직 5명 중 7월에 고용기간이 2년이 되는 직원은 3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홍모 사장은 “기간이 만료된 직원을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뽑는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당장 직원을 새로 뽑으면 새로 일을 가르쳐야 하고 생산성도 떨어진다”며 난감해했다.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기업도 있다.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인 B사(서울 강남)는 그간 편법으로 고용 기간이 2년 된 비정규직을 계열 회사 소속으로 바꾼 뒤 똑같은 일을 하게 했다. 이 회사의 강모(42) 전무는 “법이 어떻게 되건 현재로서는 편법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직장을 잃는 비정규직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24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55.3%가 절반 이상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문병주 기자, 사진=김형수·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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