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사진예술]상.외면받는 사진 컬렉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예술 단체 가운데 사진동호인회 만큼 많은 것도 드물다. 그러나 우리 문화계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대한 인식은 아주 엷다.

올해 사진영상의 해가 제정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때문. 요란스런 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진계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바탕이나 기초에 대한 문제는 손도 안대고 있어서다.

사진계가 현안으로 말하고 있는 사진컬렉션 활성화와 사진시장 육성문제를 2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지난 4월초 서울 인사동 한 화랑주인은 뉴욕에 있는 친한 딜러로부터 팩스 한 장을 받았다.

4월7일 뉴욕서 열리는 소더비 경매에 한국에 대한 오래된 사진집 한 권이 나온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국 아시아함대를 종군한 영국인 펠릭스 비토가 찍은 사진집이었다.

예상가는 3천~5천달러. 이 화랑주인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필요할 것' 이란 생각에 응찰에 나서기로 했다.

내심 작정한 낙찰선은 1만달러 선. 그러나 경합이 붙으면서 이 앨범집은 예상을 깨고 3만2천2백달러까지 치솟으면서 결국 외국인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48장의 사진이 4천5백만원이라면 그로서도 국내 고객을 설득하거나 권유할 수 없는 액수였다.

이 화랑주인처럼 사진을 다루고 싶지만 국내에서는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화랑이 적지 않다.

지난 봄 3회에 걸쳐 사진전을 기획해 소개한 갤러리 코팩의 홍송원사장은 "컬렉터가 관심을 보여도 정작 사지는 않아 애를 먹었다" 고 말한다.

그녀의 말은 수집가의 손이 지갑 앞에서 멈추는 것은 사진 컬렉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라는 것. 현대미술 컬렉션 같으면 미술관이 개인 수집가들을 알게 모르게 리드하면서 컬렉션의 방향을 선도해주고 있지만 사진에는 이런 기준을 잡아주는 곳이 국내에 거의 없다는 말이다.

국내에서 사진 컬렉션을 한다고 알려진 공.사립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대전 한림미술관.경주 선재미술관 정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사진 컬렉션 규모는 5백22점 (98년6월말기준) .전체 컬렉션의 10%를 넘는 규모지만 내역을 들여다보면 초라하다.

사진 컬렉션 가운데 4백여점이 지난 82년 원로사진가 임응식씨가 기증한 것으로서 이를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수집한 사진은 1백점 정도에 불과하다.

선재미술관이나 한림미술관은 사진에 관심이 있어 사진기획전을 꼬박꼬박 열고 있지만 컬렉션은 아직 드러내놓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사진사연구소 최인진소장은 "국내에서 몇 군데의 미술관에서 사진컬렉션을 하고 있다고 해도 외국의 유명 사진작가가 중심" 이라고 지적한다.

사진계에는 매년 대학이나 전문대학의 문을 나서는 예비사진작가들은 1천명선. 그러나 이들이 작가로 성장하고 작업을 계속하기 위한 하부구조나 다름없는 사진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곳은 전무하다시피한 것이 국내 현실이다.

그러나 닭과 달걀 논쟁처럼 '누군가 나서서 사진 컬렉션을 시작할 때' 라는 말 뒤에 곧 뒤따르는 지적이 '국내에 제대로 된 사진 시장이 있느냐' 는 문제다. 한마디로 믿고 살만한 사진을 추천해주는 사진전문화랑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작가 구본창씨는 이것을 답답하게 느껴 직접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그는 8월초 동숭아트센터에 사진전문화랑을 개관하고 사진시장을 확보하는 일에 나설 작정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