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상 전향제도의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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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공안사범들에게 적용해 오던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키로 했다.

지금까지 미전향 공안사범은 사면.복권.가석방 대상에서 제외해 왔으나 앞으로는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만 내면 이에 포함시키기로 방침을 바꿨다는 것이다.

사상전향제도는 건국이래 일관되게 지켜져 온 공안정책의 근간이다.

특히 남북분단 이후 한때 정치.사회이념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사상 전향의 강요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전향제도를 예로 들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전향제도의 폐지는 바람직한 방향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권 신장면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또 그동안의 '레드 콤플렉스' 에서 벗어났다는 우리 정부의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해당자가 많지 않은데다 거의 고령자들이어서 석방해도 사회안전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그러나 전향제도의 폐지에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

우선 젊은 층에게 이념의 혼란을 초래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공산.사회주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혼재 (混在) 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이다.

또 과거의 예로 보아 사상범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위법.폭력성이 언제 표출될지 모른다는 잠재적 위험성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밖에 북한측은 변화 조짐이 없는데 우리쪽만 너무 급하게 개방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민가협 등 재야단체에선 전향서 대신 받기로 한 준법서약서도 차별대우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이 우리 국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특히 이들이 가석방.사면 등 '혜택' 을 기대한다면 준법서약 정도는 실효성 문제를 떠나 상징적으로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편 여권이 검토중이라는 한총련의 이적단체 제외는 어불성설 (語不成說) 이다.

한총련이 이적단체라는 것은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

이를 단순한 행정.정치행위로 뒤집는다는 것은 바로 법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전향제도 폐지나 한총련 관용 검토 등은 모두 햇볕론과 같은 맥락이다.

남북분단 상태에서 이념문제는 혼란이나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두루두루 여론을 청취하라고 당국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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