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구조조정 기업에 격려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얼마 전 한 민간경제연구소가 발표한 '10대 도산기업분석보고서' 에 따르면 한보.기아.대농.삼미.진로.삼립식품.삼익악기.우성건설.유원건설.건영 등 10대 도산기업은 대체로 7가지 요인으로 도산했다고 한다.

첫째, 1인경영체제다.

회장 또는 사장 1인의 자기과신에서 오는 독단과 전횡에 의한 의사결정,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내가 해야 된다는 아집과 오만으로 경영했던 기업은 거의 다 쓰러졌다.

둘째, 차입금에 의한 사업다각화의 실패를 들 수 있다.

국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마구 빌려 들인 차입금으로 무모하게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다 과다한 금융비용부담과 사업부진으로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셋째, 경영자의 리더십 부재도 큰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최고경영자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중지 (衆知) 를 모은 뒤의 의사결정 대신,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빈번한 정책변경 등 일정한 원칙과 철학을 가진 리더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기에 영합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지 아니한 채 결정을 자주 번복하는 리더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거의 다 쓰러졌다.

넷째, 매출이익률 향상보다 매출외형 증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재무관리에서 안전성.수익성을 무시하고 성장성만 추구한 기업은 거의 다 쓰러졌거나 또 쓰러지고 있다.

다섯째, 도산하기 4~5년전부터 자기자본수익률.매출액증가율.순이익률.자기자본증가율이 계속 하락하는데도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여섯째, 도산 직전까지 모든 경영지표가 마이너스성장을 2~3년간 지속한 기업들은 거의 모두 쓰러졌다.

일곱째, 경영진 내부의 경영권분쟁이나 노사분규가 심했던 것도 도산을 촉진한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보유부동산과 일부계열사를 팔기 위해 내놓았고 경영혁신과 조직개편, 감원과 급여삭감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미 정부당국은 지난해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 (IMF) 과 구제금융협정을 체결한 후 강도 (强度) 높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시키고 있다.

예컨대 정부당국은 모든 기업에 대해 앞으로 상호출자.상호지급보증 및 내부거래를 금지했고 이미 이뤄진 것은 2000년까지 시정하도록 시한부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은 임직원들을 상당수 자진퇴직시키거나 정리해고를 하고 있다.

남아 있는 임직원에 대해서도 임금동결 내지 임금삭감 등을 단행했다.

지금부터 상호출자.상호지급보증 및 내부거래를 못하게 된 각 계열사는 '홀로서기' 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 결과 각 계열사는 과거의 관행을 단절하고 대표이사 책임아래 '살아남기 시험의 모범답안' 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종의 독립채산제와 비슷한 '책임경영체제' 를 확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앞으로 정부당국은 첫째, 소생가망이 별로 없는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협조융자라는 이름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퇴출시키도록 하고 이러한 구제금융자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실한 기업들에 융자해 줘야 한다.

둘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투명경영 (corporate transparency) 을 실현하기 위해 기업의 각종 정치헌금 부담을 줄여 주고 또 부담하는 정치헌금은 양성화해 기업의 재무제표에 표시하도록 하며 헌금액에 대해 조세감면혜택을 줘야 한다.

셋째, 정부는 책임행정체제를 확립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애당초 수조원의 예산으로 착공했던 경부고속철도가 부실공사와 공기 (工期) 지연으로 공사비가 20조원 수준으로 증가해도 부실공사와 공기지연 및 예산낭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정부자세는 잘못이다.

정부도 잘못이 있으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 주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에 책임경영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잘못된 관행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많이 지적된 바 있다. 이제부터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도록 방향을 잡아 주고 고치는 시간을 줘야 한다.

우리는 구조조정을 잘하는 기업에는 따뜻한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동기 (고려대교수.학술원 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