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3천여명까지 몰려 명동성당 다시 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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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가 정부와 협상할테니 일단 내려가시지요. " "얘야 이런다고 뭐가 해결되니, 그만 가자. " 폭우가 쏟아진 2일 낮 서울 명동성당에는 대구지역 상공인과 대동은행 직원들의 가족들이 찾아와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성당 주변을 빽빽하게 메운 농성 직원들을 헤집고 다니며 흡사 이산가족 상봉하듯 겨우 아들을 만나 직장복귀를 설득하던 한 아주머니는 생계대책 등을 얘기하는 아들에게 오히려 설득당하다시피 물러나야 했다.

대동은행 노조위원장을 설득하던 대구상공회의소 김규재 (金圭在.54) 부회장도 30분만에 서울역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명동성당이 거대한 농성장으로 변했다.

지난달 29일 부실은행 퇴출발표 이후 대동은행 등 5개 퇴출은행 직원 3천여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 철야 농성자는 1백여명에 불과하지만 오전 8시쯤이면 은행직원들이 몰려들어 명동성당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들의 '퇴출 철폐' '고용 승계' 구호소리에 먼저 명동성당을 차지 (?) 했던 한총련 학생과 일용직 건설노동자 1백여명의 '탄압 중지' '고용 보장'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명동성당에 이처럼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 성당 관계자의 말. 이들의 농성이 계속되면서 성당측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호와 노랫소리 때문에 미사를 보지 못할 정도고 교인들은 주차장.화장실 이용에 애먹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이다.

1일 노조위원장에게 "교회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 고 주문한 것이 고작. 정진석 (鄭鎭奭) 서울대교구장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성당은 억울한 자를 보호한다" 고 밝히는 등 오래도록 이어져온 '약자보호' 전통을 깰 수 없는 입장이어서 냉가슴만 앓고 있다.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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