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 총리, 끝없는 '겨울 연가'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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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겨울연가'사랑이 끝이 없다.

그는 22일 오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제주도에서 귀국하자마자 도쿄(東京)의 관저에서 TV드라마 '겨울연가'의 여주인공 최지우와 만났다. 이날 '2005 한.일 공동방문의 해'의 한국 측 홍보대사로 임명된 최지우의 예방을 받는 형태였다. 화두는 역시 '겨울연가'였다. 함께 있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일본 국토교통상은 총리 옆자리를 최지우에게 뺏겼다.

방에 들어서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최지우를 보자마자 번쩍 손을 들어 "어, '후유노 소나타'"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줄곧 겨울연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드라마에 나온 남이섬의 전나무 숲길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꼭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 그는 "남이섬에서 남자 주인공 배용준과 첫 키스를 했던 벤치가 아직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깜짝 놀란 최지우가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시느냐"고 하자 그는 "일본에도 그런 곳이 많으니 다음에는 꼭 일본에 와서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옛 수행자들이 다니던 길로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와카야마(和歌山)현의 '구마노고도(熊野古道)'를 추천하기도 했다.

최지우가 "총리께서 제주도에 다녀 온 것으로 안다"고 하자 그는"'제주'(일본어론 '최주'로 발음됨)와 '최지우'는 같은 발음이냐"고 되묻고는 "영화 '쉬리'에 나왔던 벤치와 바닷가를 거닐며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이 아니라 놀러 갔다 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예방 시간은 당초 예정된 20분을 훌쩍 넘겨 30분이나 이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겨울연가'이야기를 꺼내고, 정치에 이용하기도 한다. 지난달 3일 한 포럼에선 "'준 사마'인 나보다 '욘 사마'(배용준의 애칭)의 인기가 훨씬 높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달 참의원 선거유세 때는 늘 "'준 사마'에게 '욘 사마'와 같은 인기를 달라"고 호소했다.

총리의 입에서 '겨울연가'이야기가 떠나지 않는 데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다.

한 측근에 따르면 그는 '겨울연가'를 비롯해 한국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겨울연가는 물론이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는 게 최지우의 설명이다. 또 이혼해 10년 이상 혼자 살고 있어 순수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겨울연가'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에선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 정치인답게 '겨울연가'붐에 편승, 국민의 지지율 하락을 막으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의 지지층이던 30~60대 여성의 마음이 최근 야당인 민주당으로 많이 흘러가자, 이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선 '겨울연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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