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조국은 김가이·이가이 후손을 위해 뭘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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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사는 고려인을 방문하면 꼭 나오는 음식이 있다. ‘카레이스키 살라드(고려인 샐러드)’. 새콤한 당근 무침이다.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이라고 한다. 반찬이 있는 식문화. 참 한국적이다. 다른 민족에게도 인기다. 시장엔 ‘고려인 반찬가게’가 있는데 제일 빨리 동이 난다. 카레이스키가 ‘옛 소련 지역에 사는 한민족’을 가리킨다면 이 음식은 괜찮은 한국 홍보를 하는 셈이다. 고려인은 대부분 한국의 성씨(姓氏)를 사용한다. 가끔 ‘김가이’ ‘이가이’라는 성도 보이는데 이것도 한국 성이다. 정착 초기에 “당신 성이 뭐냐”는 질문에 “김가요” “이가요”라고 답하면서 생겨났다. 이것이 고려인이 지켜온 정체성이다.

고려인은 ‘100년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었다. 19세기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많은 한민족이 연해주로 이주했다. 경제적 문제와 ‘독립운동’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터를 잡은 1937년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그러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농사를 잘 짓는 민족’으로 거듭난다. 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고려인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국가에 살게 됐다.

모스크바에 사는 고려인 리가이 다비드(54)는 “37년 이주 1세대는 성실하게 일해 2·3세대가 좋은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적지 않은 2·3세대가 1세대의 고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무국적 고려인을 설명하는 말이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여러 한국 공직자를 만났다. 어떤 이는 “법적으로 보면 무국적 고려인은 불법 체류자일 뿐”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무국적 문제는 ‘과거의 (외교) 담론을 바꾸는 일’이다. 고려인이 그곳에 어떻게 살게 됐는지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고려인과 우리 국민은, 두 번째 공직자처럼 생각하고 정책을 만드는 국가를 원할 것이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흩어진 자국민의 후손을 막대한 돈을 들여 자기 나라로 데려왔다. 미국은 지금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군인의 유해를 세계 곳곳에서 찾고 있다. 100년 넘게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온 고려인에게, 경제 규모 세계 13위의 모국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