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출구전략 짤 때 아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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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자유낙하(free fall)가 멈추긴 했지만 불안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 상반기 세계경제는 대충 이 정도 표현으로 요약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쪽 끝에선 본격적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예측하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선 진짜 위기가 조만간 다시 온다는 비관론을 펴기도 하지만 평균적 컨센서스가 그 정도란 얘기다. 하지만 그 평균이란 것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정책운용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이냐는 문제는 결국 선택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올 하반기에도 현재의 확장적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의 경제상황이 당초 걱정했던 수준보다는 낫게 나왔지만 제비 몇 마리에 봄이 왔다고 반기기엔 무리라는 판단이다. 정말 봄이 왔다면야 두껍게 껴입었던 옷도 좀 벗고 해야겠지만 그랬다가 자칫 덧나는 날엔 그동안 들인 공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런 판단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 25일 성명에서 ‘경기 위축 속도가 둔화되고 금융 여건도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면서도 ‘당분간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일 게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4일 유럽 1000여 개 은행에 4400여억 유로를 1년간 현 기준금리(1%) 조건으로 대출한 것도 결국 당분간은 경기부양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경쟁적으로 풀어댄 돈이 경기회복과 함께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이른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빨리 수립해야 한다는 논의는 적어도 정책운용상에서는 일단 사그라든 모습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하반기 경제운용에서 출구전략 부재를 비판하기도 한다. 출구전략의 성패는 타이밍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지금이냐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선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상반기 경제지표가 뭐에 기반했느냐는 문제다. 내수에서는 재정확대, 수출에서 원화 저평가라는 두 요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재정확대는 한계가 있고, 환율 요인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특수 요인에 기반한 상황 변화를 구조적 변화로 오인하고 이를 근거로 정책을 펼 수는 없다. 더욱이 절대 수치로는 남보다 가까이 왔다는 것일 뿐 여전히 수면 아래다.

최근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국내 일부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주택담보대출 증가 등 몇몇 요인을 위기 신호로 보는 이도 있지만 실업 문제나 투자 위축, 세계 교역량 감소 등 다른 신호도 여전히 많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현재의 위기 대응 방식상 출구전략이 필요한 상황이 언젠가 오겠지만 현재의 불투명한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말하는 건, 아직 아니지 싶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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