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망치는 표절잡이 망 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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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마전 광고대행사 LG애드의 한 제작팀은 3개월여 다듬어 온 광고 아이디어를 대폭 수정해야 했다.

제작진 중 한 명이 "도입부의 컨셉트가 일본 광고와 비슷하다" 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제품도 달랐고 분위기도 판이했다.

설령 그대로 만든다 해도 심의에 적발될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창작을 생명으로 하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 지난해 제일기획에선 모방 시비가 인 광고작품에 대해 제작관련자를 감봉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외국 것을 베꼈다는 의혹이 인 호출기 광고였다.

이것 역시 외부적인 제재는 없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 대신 엄중 문책하고 이를 사내에 공표하는 길을 택했다.

일벌백계의 의미였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광고 = 표절시비' 아니었던가.

심지어는 모방 작품이 외국 광고제에 출품돼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만치 빠른 속도로 표절 관행이 뿌리뽑히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표절의 첫 차단막은 광고종사자 자신. 아이디어 단계에서 조금이라도 오해를 야기할 만한 사항이 발견될 경우 즉시 방향을 바꾸는 분위기다.

다음 단계는 사내 자체의 심의다.

각 광고대행사는 CRB (Creative Review Board) 같은 자체심의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 간부.임원진은 물론 대학교수.전공학생 등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이 기구는 광고가 지면이나 화면을 타기 전 자체 평가와 함께 모방.표절 부분을 잡아낸다.

제일기획 김형근 대리는 "설사 이곳을 무사 통과하더라도 사후에 적발될 경우 엄한 처벌이 가해진다" 고 밝혔다.

외부적인 장치로는 방송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93년 아기오리와 엄마오리가 등장하는 AT&T 전화기 광고를 모방한 무선전화 광고에 대해 방송중지 처분을 내린 이후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도 안전성을 강조한 한 자동차 광고에 대해 독일 벤츠사를 모방했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결정을 했다.

방송위원회 김성욱씨 말로는 "경쟁사끼리의 제보가 활발하다" 는 것. 여기다가 최근 활발히 미디어 감시기능을 수행 중인 PC통신 광고동호회의 역할도 크다.

이러한 광고계의 변화는 아직도 표절을 일삼고 있는 방송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LG애드의 한 관계자는 "이제 광고계에선 모방이나 표절을 치욕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다" 면서 "내부적인 자체 심의기능과 외부적인 규제가 작동한다면 방송등의 표절관행도 달라질 수 있을 것" 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가라,가라 표절' 의 날은 언제일까.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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