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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참 멋있어졌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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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35면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는 막내 동생 부부가 지난달, 1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서울과 제주도에서 휴가를 즐긴 동생 부부는 출국 전날 내가 사는 구기동 집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서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피자를 집어 들며 동생이 말했다. “피자가 얼마나 맛있는지 미국 피자와는 비교가 안 되네요. 서울이 여러모로 참 멋있어졌어요.” 저녁 내내 부부가 맞장구를 치며 서울 예찬론을 펴는데 내심 여기 사는 친척들이 부러운 눈치였다.

그들 말대로, 정말 서울이 달라졌다. 거리가 아름다워지고,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공기가 좋아졌다. 시민을 배려하는 서비스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명실공히 선진국의 수도다운 느낌이 든다. 자랑하고 싶은 도시가 돼 간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힘들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출근길이 즐거운 드라이브 코스로 변했다. 북한산 기슭, 숲으로 우거진 구기동을 출발해 아기자기하게 정돈된 부암동 길을 따라 내려오면 청와대 앞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경복궁 서편 담을 끼고 내려와 새로 짓고 있는 광화문 터를 지나면서는 웅장하게 새 단장될 세종로의 모습을 그려본다. 청계천 입구, 덕수궁, 서울광장을 지나자면 요즘 들어 아름다움을 더해 가는 반포대교 하단에 이른다. 여기서 나는 반사적으로 속도를 줄이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다리 남쪽에 조성 중인 강변공원 등을 감상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학교가 자리한 예술의전당에 도착하는 것이다.

퇴근길 역시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지 서울 시내 공사현장에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가림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오며 가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울시청 공사 현장의 가림막은 미래적인 건축물을 방불케 하고, 항아리 모티브의 광화문 가림막은 밤에 조명까지 더해지면 야외 갤러리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한다. 공사 중 미관을 해치지 않으려는 실용적인 배려를 넘어, 도시 곳곳을 디자인과 문화 요소로 채워주는 이 특별한 가림막들의 등장은 서울이 ‘세계 디자인 수도’로서 구석구석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의 삶과 소통하는 예술, 이른바 공공예술의 진화를 확인하는 것 같아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세계를 다녀 보면 서울같이 오랜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지역은 예외 없이 구도심(Historic Center), 즉 옛 도시의 중심부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성 안쪽이고, 서울의 경우는 사대문 안일 텐데, 서울은 오랫동안 이 지역을 방치한 나머지 독특한 볼거리도 매력도 없는 도시가 돼버렸던 것 같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을 시발점으로 고도(古都) 서울을 재발견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이 모이면서 서울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한강 및 남산 르네상스, 종묘부터 남산을 잇는 녹지 조성사업인 ‘초록띠 공원’같이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산재한 개천 복원 사업 등 지자체나 동네 차원에서도 녹지공간을 갖추고 거리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저마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시 변하고 있다. 공공시설에 여자 화장실 수를 늘리고 외진 골목에 가로등을 확충하는 등,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단다. 외국인 거주자, 다문화 가정과 입양인들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약자와 소수를 배려하는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구축이야말로 서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을 글로벌 선진도시로 발돋움시킬 것이라 믿는다.

음식문화는 또 어떠한가? 중식·일식·이탈리아 식 정도가 다였던 외국음식 전문 식당은 최근 몇 년 새 그 종류와 수가 모두 획기적으로 늘어, 서울은 인도·네팔·파키스탄 등 아시아권은 물론 독일·멕시코·터키에 이르기까지 세계 거의 모든 문화권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에스닉 푸드(ethnic food)의 명소가 돼 가고 있다. 나의 집이 있는 구기동에서 평창동·부암동 일대는 채 5분 거리도 안 되는 좁은 지역인데, 7~8년 전까지만 해도 두어 곳이던 이탈리아 식당이 이제는 15곳이 넘는다. 대부분이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커피 전문점 역시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서울의 커피 맛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물론 아직도 할 일은 많아 보인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무질서한 간판을 정비하는 일부터 고즈넉한 동네에 술집과 상점이 난입하지 않도록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구분하여 관리하는 일,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성숙한 대중 교통 시스템을 갖추는 일 등. 그러나 나는 변모하고 발전하는, 전통적이면서 다이내믹한, 서울의 생동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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