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떠난 지 1년 시조 한권 남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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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구하 유고 시집 『햇빛이 그리울수록』

무어라 열심히 답을 쓰긴 썼는데

다 쓰고 다시 보니 거꾸로 쓴 답이었네

시간의 종은 울리고 답안지는 앗기고

<박시인의 ‘인생2’>

1년 전 62세 나이에 뇌출혈로 타계한 박구하 시조시인. 시집을 내라는 독촉에도 “아직 멀었다”고만 하던 그의 컴퓨터에는 시조 300여 수가 남아있었다. 추모위원회가 그중 170여 수를 추려 유고집 『햇빛이 그리울수록』(해와달·사진)을 냈다.

그는 “채이며 사는 것도 발로 차며 사는 것도/겉도는 나의 삶은 구르는 저 돌멩이”라 노래하던 시인이었다.

“물 먹고/물 먹어도/못 떠난 세월의 강//이목구비 다 내주고/어깨선도 눅어지고//이제는 그냥 굴러도/아무데나 어울리는 돌”(‘몽돌’)

제 몸은 최대한 낮추어 둥글리고 깎아냈다. 그러나 모자란 시인을 보듬는 아내는 부처가 되었다. “가르치던 입도 닫고 흘기던 눈도 감고/지상에서 가장 늦게 하루를 종료하는/낯익은 잠든 얼굴이 볼수록 낯설어라//내가 던진 돌로 빚은 아내의 반가유상/옷깃에 매달린 낙발보다 가는 숨결/컥, 하며 목이 말라도 차마 깨우지를 못한다”(‘병후’ 부분)

아내는 또 하나의 어머니였다. “그 얼굴 어른거려/아들은 잠 못들고//새벽녘 부시럭대며/도시락을 챙기는//아내의/손끝 너머로/어머니는 오시었다”(‘어머니 25’) 시인은 몹쓸 병 걸려 떠난 어머니를 31편의 연작시조로 빚어냈다. “병실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치다/어쩌다 한 번 오는 못난 자식 나타나면/새악시 서방님 보듯 다소곳 돌리던 고개”(‘어머니 17’) “어제는/어머니가 마구 보고 싶었어요/오늘은/어머니가 그냥 보고파요/어머닌/이러는 내가/보고 싶지 않나요”(‘어머니 6’)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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