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하비비 취임1달]격변의 정치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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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는 21일이면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 인도네시아대통령이 철권통치자 수하르토 전대통령으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은 지 한 달이 된다.

이 기간중 민주화의 싹은 부쩍 컸지만 유혈사태의 원인이 됐던 경제는 아직도 먹구름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하비비체제 출범 한 달을 짚어 본다.

하비비 집권 한달을 맞은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집권 32년 동안 겪었던 변화를 능가하는 엄청난 민주적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집권당에 유리하게 돼 있던 정치관계법 개정이다.

집권 골카르당을 비롯한 3개 정당만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돼 있던 선거법을 개정해 자유로운 정당창당과 선거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슬람 단체들의 정치세력화가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인구 2억2천만명중 95%가 이슬람교도이지만 이들은 수하르토가 집권하는 동안 정치집단으로서의 영향력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세력은 진보 이슬람지식인들로 구성된 '인도네시아 이슬람지식인연합 (ICMI)' 이다.

과거 하비비가 이끌던 이 단체는 교수.변호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로 구성돼 영향력이 막강하며 정당구성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현 재야세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아미엔 라이스 (53)가 이끄는 2천8백만 중산층 이슬람교도 모임 '모하마디야 (모하마드의 길)' 도 정치세력화를 서두르고 있다.

3천5백만 이슬람장애자들의 모임인 나흐다툴 울라마 (NU) 도 지난달 31일 열린 기도회에 1백만명을 동원하는 등 세를 과시하고 있다.

정치분석가인 아밀 사니트는 "대부분의 이슬람 세력들은 정당화할 준비를 완료했다" 고 전했다.

수하르토라는 큰 방패막이가 사라져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 화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도 지난 5일 '인도네시아 화교 개혁당 (ICRP)' 을 창당했다.

'개혁을 위한 시민포럼 (CFR)' 이란 화교 정치단체도 구성됐다.

이에 대해 하비비정권과 군부는 현재로선 폭력적인 소요와 동티모르 독립요구 시위를 제외한 어떠한 정치적 요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인도네시아 군부는 내심 이슬람교도의 정치세력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다수이면서도 철저하게 억눌려온 이슬람교도들이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경우 군부의 독주가 와해될 것을 우려함에도 현재의 민주화 추세에 역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하르토 체제하의 반체제인사와 동티모르 독립운동과 관련돼 수감된 민주인사들이 잇따라 석방된 것도 대표적인 민주 개혁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도전도 만만치 않다.

15일 테갈 등 3개 도시에서 수천명이 수하르토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공직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듯 민주화 과정에서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해주느냐가 민주 하비비 체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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