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일부터 시작해 CNN서 가장 빨리 승진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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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미국의 뉴스 채널 CNN은 ‘뉴스 왕국’으로 불린다. 24시간 세계 곳곳에서 뉴스를 채집해 방송한다. 212개국 1억5000만 명 이상이 CNN의 뉴스 망을 시청하고 있다. 유럽·중동·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태평양 등 5개 CNN 지부가 거대한 세계 뉴스의 흐름을 주시한다.

CNN 아시아·태평양 지부 총괄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는 엘레나 리. ‘토종’ 한국인으로서 ‘뉴스 왕국’ CNN에서 근무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세계인에게 한국이 부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CNN 제공]

그런 뉴스 왕국을 총괄하는 매니저 명단에 한국인 여성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CNN 아시아·태평양 지국을 총괄하는 엘레나 리(38)다. 2007년부터 CNN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으로 일한다. 1997년에 입사한 그는 10년 만에 최고 관리자 자리에 올랐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는 물론이고, CNN 창사 이래 가장 빠른 승진 케이스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뽑은 ‘차세대 지도자(Young Global Leader)’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전에 졸업장 받고 오후에 CNN으로 출근”=“한국인이라고 해서 차별받는 일은 없어요. CNN은 작은 유엔 같거든요. 전 세계가 뉴스의 무대이니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건 강점이지 약점일 수가 없지요.”

그는 인터뷰 내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했다. 짧게 답할 수 있을 땐 한국말로, 장황한 대답이 필요할 땐 영어로 했다. 미국 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을 달성한 그이지만 실은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태어났으나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 유년기 기억은 죄다 한국에 뿌리박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어는 서툴고 영어는 유창할까.

“한국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에선 영어만 썼고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영어로만 했죠. 오히려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걱정하신 부모님이 한국어 과외를 시키기도 하셨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미국땅을 다시 밟았다고 했다. 조지타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뉴욕대에서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마쳤다. CNN과의 인연은 대학원 시절 맺어졌다. CNN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그는 서류 복사부터 인터뷰 스크랩 작성까지 허드렛일을 하며 언론계를 바닥부터 체험했다. “저를 유심히 봤던 회사 관계자가 졸업하면 곧장 CNN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꿈이 이뤄지던 순간이었죠. 대학원 졸업식을 오전에 하고 오후에 곧장 CNN으로 출근했어요.”

◆“북한 특집 방송하고 싶어”=프로듀서로 입사한 그는 CNN에서 중국과 인도의 발전상을 심층 분석한 ‘아이 온 차이나(Eye on China)’ ‘아이 온 인디아(Eye on India)’ 등 기획 프로그램을 히트시키면서 입지를 굳혀갔다. “쓰나미 취재를 총지휘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열흘간 꼬박 회사에서 살았죠. 사망자 집계수가 분마다 100명 단위로 올라가는데 정말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쓰나미로 부모 잃은 아이들에 대한 보도를 하는데 곳곳에서 돕겠다는 연락이 오기에 이런 게 CNN 뉴스의 힘이구나 싶었죠.”

그는 오는 10월 일주일간 방송되는 ‘한국 특집’을 구상 중이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뉴스가 더 정확하게 보도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어요. CNN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죠. 한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많고요.”

그는 언젠가 ‘북한 특집’을 꾸미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 “북한은 여전히 서양인들에겐 미지의 땅으로만 인식되고 있어요. 직접 북한을 찾아서 사람들의 속내도 들어보면서 심도 있는 북한 특집을 꾸미고 싶어요.”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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