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채권 소화' 당국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구조조정을 위해 발행키로 한 채권의 소화방법을 놓고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재경부는 구조조정채권의 일부를 한은이 인수해주기를 희망하는 반면 한은은 시장을 통해 일반에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철환 (全哲煥) 한은총재는 12일 창립 48주년 기념사를 통해 "채권발행은 통화관리부담을 가중시키는 중앙은행의 직접 인수보다는 실세금리 보장을 통해 시장에서 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고 밝혔다.

정부가 요청하면 당연히 한은이 채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발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금융구조조정 비용 마련을 위해 채권발행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은이 통화관리에만 매달려 채권인수를 외면한다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정부는 지난달 금융구조조정의 밑그림을 발표하면서 ^부실채권인수에 25조원^금융기관 증자지원에 16조원^예금대지급에 9조원 등 모두 50조원의 공채를 올 하반기와 내년에 걸쳐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성업공사가 발행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 25조원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맞바꾸게 되고 증자지원을 위한 예금보험기금채권 16조원도 현물출자되기 때문에 실제로 현금으로 조달해야 할 채권규모는 예금대지급을 위한 9조원 정도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를 한은이 인수해주지 않고 시장에 내다팔려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 토로했다.

실세금리로 발행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이 작고, 실세금리로 발행하자니 국민부담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9조원 규모의 채권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을 경우 회사채발행이 위축되는 '구축 (驅逐) 효과' 와 실세금리의 상승을 유발할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全총재는 "한은이 지난해 9월이후 금융시장안정을 위해 지원한 20조원을 거둬들이기 위해 발행한 통안증권이 48조원에 이르는 등 통화관리비용이 연간 7조원에 달한다" 며 공채인수에 난색을 표했다.

지난 86년이후 통화증발압력을 흡수하기 위해 발행한 거액의 통안증권이 90년대 중반까지 통화정책을 왜곡시킨 주요인이었다며 공채인수로 이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재경부는 일단 한은을 설득해보고 끝까지 인수를 거부할 경우 다른 금융기관에 인수토록 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신예리.박장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