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3김의 새 애증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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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초순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황혼기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었다. 삼성 정치자금 15억원을 받은 사건에 대한 선고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TV에서 JP재판 뉴스를 본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JP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위로의 자리였다.

여당대표 시절 YS를 대통령으로 모셨던 JP는 호텔 저녁식사에서도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

저녁 얘기를 전해들은 Q씨에 따르면 두 사람의 대화 중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취기가 오른 JP는 내각제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 등 DJ의 위약(違約)사례를 집중 거론했다. JP의 언사가 얼마나 거셌던지 나중에 YS는 지인들에게 "JP가 나보다 더 DJ를 공격하더라"고 말했다.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기념도서관에는 DJ가 소장하다가 기증한 1만여권의 책이 있다. 그중 YS에 관한 책은 20여권인데 3분의 1가량이 YS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머리를 잘못 빌린 대통령""YS의 44가지 잘못""잃어버린 (YS) 5년""개털은 가라. 파티는 끝났다" 등등 자극적인 제목도 적잖다. 대부분은 YS가 대통령으로 있던 1995~96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다. DJ가 이 책들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DJ는 자신의 집권을 꿈꾸면서 어떤 형태로든 YS의 실정과 약점을 연구했을 것이다.

YS-JP 회동과 DJ의 소장도서는 '3김 애증(愛憎) 변천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되고 있다. 3김 중 최초의 연대는 80년대 YS-DJ의 민주화 연합이었다. 연합은 후보단일화 실패로 깨졌고, YS는 90년 3당 합당으로 JP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이 연대는 95년에 부서진다. 집권 상도동 세력의 압박에 반발해 JP가 자민련을 만드는 것이다. 인연은 돌고 돌아 97년 대선 때는 내각제를 매개로 DJP 연합이 결성됐다. 하지만 2000년 10월 임동원 국정원장의 경질을 요구한 JP를 DJ가 뿌리치면서 DJP도 분해됐다.

이제 3김 인생의 석양기에서 반(反)DJ YS-JP연합이 무르익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DJ-노무현 연합이 생길지도 궁금하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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