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일요일 풍경]오락실·먹거리 판치는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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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인사동 네거리에 최근 전자오락실이 문을 열었다.'화랑의 거리' '문화의 거리' 에 근래에 없던 이 낯선 풍경이 출현한데 대해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일요일 차없는 거리' 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일요일만 되면 인사동은 고유의 정취는 간데없고 먹거리만 판치는 저잣거리로 바뀐다.

작품 감상보다 화랑 앞 좌판의 엿과 떡에 더 관심있는 청소년들로 넘쳐나는 시점에서 전자오락실이 출연한 것.

단성갤러리 등 일요일에만 입장료를 받는 화랑이 생겨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갤러리 사비나도 매주 일요일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너무 많은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한때 관람료를 받기도 했다.

이들 화랑의 공통된 의견은 "진짜 작품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파에 휩쓸려 화랑에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감상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 갖고 들어온 음식을 작품에 묻혀 훼손하는 경우까지 있다" 며 "쾌적한 관람을 위한 적정 인원 조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받는다" 는 것이다.

한 화랑주는 "인사동을 문화의 거리로 가꾸겠다던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오히려 '파괴회' 역할을 한다" 고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화랑들을 비난하는 여론 역시 만만치 않다.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울려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 원래 '문화의 거리' 취지인데 몰려드는 사람을 귀찮아하는 화랑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돈 안되는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구는 통에 일요일에 쉬지도 못한다" 는 화상들의 불만이 화랑 유료화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냐며 반발하는 것.

양측 모두 나름의 합당한 논리를 갖고 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이유는 이 장소가 지닌 '문화의 거리' 이미지 때문이라는 점. 인사동이 이런 판으로 가다 그저 놀자판.먹자판 거리로 변한다면 결국 화랑과 문화관련 업소는 다 떠나가고 황폐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담겨있다.

가나화랑 이호재 (45) 사장은 지난해 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을 맡으면서 "먹거리는 골목으로 몰고 큰길에는 다양한 문화상품을 파는 좌판을 설치하겠다" 고 했으나 결국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해 인사동에 뜻하지 않은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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