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조각가 이일호 4년만의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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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생물학적 바이탤리티가 떨어지면 누구든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 쉰을 넘긴 조각가 이일호 (51) 씨도 "요즘은 은근한 게 좋다" 며 근래 들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인정한다.

이씨는 마치 성력 (性力) 을 숭배하는 인도의 탄트라 조각처럼 남자와 여자가 기묘한 포즈로 뒤엉켜 있는 조각으로 유명한 작가.

그가 4년만에 서울 사비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중년의 원숙함과 은근한 분위기로 접근한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16일까지 02 - 736 - 4371. 그러나 소재는 변함없이 여체이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재료가 철판으로 바뀌었고 형상이 간명.단순해진게 변화다.

"흔히 에로틱한 작업을 하는 작가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대조각은 재현이 목적이 아니고 매스 (mass).공간감이니 하는 추상적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지요. " 그의 말에 따르면 남녀 상합 (相合) 의 포즈는 보는 사람의 집중력을 끌어두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 철판의 속성이 그런 것처럼 이번 작업에는 평면화와 단순화가 두드러져 보인다.

둥근 쇠파이프를 듬성듬성 잘라내 만든 남녀의 포옹 포즈는 형태가 단순한 만큼 상상력이 끼여들 여지가 넓어졌다.

또 그만큼 넓어진 중년다운 마음의 여유 같아 보이기도 하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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