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사랑의 묘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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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2의 성혁명이 도래할 것인가.

지난 3월말 미 식품의약국 (FDA) 이 비아그라라는 남성들의 발기불능을 치료할 수 있는 경구용 알약을 승인한 이래 두 달이 넘도록 이에 대한 열기는 좀처럼 꺼질 줄 모른다.

비아그라를 만들어 낙양의 지가를 올린 미국 제약회사 파이저는 이제 한 술 더 떠 여성용 오르가슴 알약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비아그라는 시판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근래 미국복용자만 1백만명을 넘어섰다니 그 위세를 짐작할만하다.

미국뿐이랴.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이 약이 정식 시판허가가 나지 않은 국내까지 버젓이 파고 들어 서너배나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1억5천만명의 남성들이 발기불능치료를 원한다고 하니 '급한 사람' 이야 앞 뒤 가릴 처지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생물학적으로도 고개숙인 남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는 하다.

세계적으로 남아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가 하면 정상적인 정자를 만들어 내는 남성의 비율도 떨어지고 있다.

핀란드 남성의 경우 정상적인 정자를 만들어 내는 이가 지난 10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프랑스의 남성들도 근래 매년 2%꼴로 정자수가 감소하며 고환의 크기도 줄어들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70년대까지만 해도 성인남성의 평균 정자수가 정액 1㏄당 1억마리 이상이던 것이 최근에는 6천만마리 정도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개숙인 남성이건 고개든 남성이건 '기적의 약' 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을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 시킨 피임약에 이어 비아그라는 남성을 '여성에 대한 무력감 또는 위축감에서 해방' 시켜 제2의 성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흔히 남성들은 섹스파트너인 여성들도 성 그 자체를 즐긴다고 여긴다.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의 성욕을 채워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몸이 피곤해도 '아내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의무방어전을 치르려고 애쓴다.

언젠가 한 남성동료는 나에게 "우리나라 남편들이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는 몬도가네식 (食) 을 하게 된 것도 따져보면 아내로부터 '밥만 먹고 사나' 하는 푸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라며 '불쌍한 남편들' 을 연발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들은 과연 행복할까. 미안하게도 그렇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어떤 주부는 내게 "성욕이 일지 않는데도 남편의 욕구에 부응해야 하는 내 자신이 마치 창녀처럼 여겨질 정도로 수치스럽다" 고 고백했다.

사실 성처럼 남녀의 시각이 확연히 다른 것도 드물다.

사이버섹스를 '21세기의 정서적 콘돔' 으로 규정하는 여성학자 크리스 크래머레이는 섹스란 남성들에게는 '하는 것' 이 중요한 반면 여성에게는 '친밀감을 나누는 것' 이 더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성행위를 중히 여기는 남성들은 섹스를 마치 다른 이와 함께 하는 팀스포츠처럼 여겨 많은 여성들이 알고 또 원하는 친밀감을 무시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우정은 사물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싹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함께 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래서 남성들은 말보다 행동을 공유해야 친밀감이 생긴다고 여긴다.

그러나 여성들은 감정을 말로 나누면서 친밀감을 쌓아간다.

미국 CNN과 USA투데이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한 기혼여성들이 '좋은 약' 이라면서도 남편이 비아그라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 이가 72%나 된 것도 단순한 성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청춘을 되찾은 70세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61세 미국할머니가 10년간의 동거생활을 내팽개친 남편을 상대로 2백만달러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고 한다.

'사랑의 묘약' 이 가져 온 제2의 성혁명이 엉뚱하게 남근우월주의를 환생 (?) 시켜 '사랑파괴' 를 일삼을까 걱정이다.

홍은희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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