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박 전 대통령과 묶어 박 대표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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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7시30분 국회 열린우리당 당의장실. 당 중진들의 모임인 기획자문위원회의를 주재하는 임채정 위원장이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며 입을 열었다.

임 위원장은 이어 "그동안 (박 대표가) 주장해 왔던 대로 상생을 위한 정치를 펼쳐 주길 바란다. 우리도 대화와 타협의 상생정치를 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보도진을 물리치고 비공개회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회의 직후 공개된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을 보면 보도진 앞에서 한 발언은 덕담일 뿐이었다. 많은 참석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결해 박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임 위원장은 "박 대표는 압축성장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 등 박 전 대통령이 만든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야당 대표로서의 영광보다 그 자리가 부채의 자리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길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알몸 박정희'라는 책을 소개하며 "책을 읽으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당키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배기선 의원은 더욱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박 대표가 '지금 이 나라에 비전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반민주.반통일.반인륜.반민족행위에 대한 과거청산 없인 상생도, 미래도 없다"며 "(박정희 유산) 청산의 구체적인 대책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원혜영 의원은 "박 대표가 선진 한국 프로그램을 말하기 전에 권위주의와 반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의 복귀 첫날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열린우리당 중진들의 발언은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각된 박 대표에 대한 견제심리에서 나온 듯하다.

또 9월 정기국회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과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 시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을 집중 부각해 박 대표를 압박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권이)지난번 총선 때부터 엄청난 비방과 흑색선전은 말도 못한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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