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혁가공 기술자 김혁현씨, 기술하나로 해외재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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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당분간 못볼 친지에게 인사 다니고, 미뤄뒀던 이빨 치료도 하고, 이삿짐도 싸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갑니다. "

피혁 (皮革)가공 기술자인 김혁현 (金赫晛.38) 씨는 지난달말 싱가포르의 유명 소파제조업체인 화타리사로부터 취업 통지를 받고 요즘 출국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고교 졸업후 82년부터 17년간 가죽을 다뤄온 경력을 인정받아 짧은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해외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金씨가 해외취업에 나서게 된 것은 생산부장으로 근무했던 소파용 피혁 납품업체가 가구업계의 불황으로 모 (母) 회사에 흡수되면서 사장 이하 전원이 지난4월 일괄 사표를 제출하게 됐기 때문. 실직후 처음에는 가죽 임가공 자영업을 하려고 알아봤지만 경기가 너무 안좋아 포기했다.

"십수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지요. 밤이면 잠이 안와 케이블방송이나 비디오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특히 어린 아들 (7) 과 딸 (6) 이 아빠가 실직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부인에게는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이후 회사 사정이 안좋아 그만둘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미리 하고 앞으로 살 일에 대해 자주 의논해와 실직의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도 생활이 방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안산 집 근처의 야산을 다녔고 꾸준히 선배와 동료들을 만나 자문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불안한 생활이 계속되던 중 한 헤드헌터 업체로부터 해외취업 의향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고 되리라고 기대는 안한 채 응했는데 뜻밖에 채용된 것이다.

金씨의 취업조건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동안 받아오던 임금의 2배가 넘는 5만달러 (약 7천만원) 연봉에 가족이 살 아파트와 비행기표까지 제공받기로 했다. 또 의료보험 등 모든 근로조건도 현지인과 동일한 대우를 보장받았다.

"다녔던 회사가 수출을 많이 해 외국 기술자와 많이 접해봤기 때문에 기술면에선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피혁 가공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겁니다. 문제는 언어 소통인데 이 기회에 현지에서 영어 연수를 열심히 받아 국제적인 기술자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

金씨 가족은 오는 10일께 같은 회사에 채용된 같은 피혁가공기술자인 노우석 (盧雨錫.40) 씨 가족과 함께 출국할 예정이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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