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내리는 해태]뒤늦은 自求…끝내 공중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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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둥이로 출발한 해태그룹이 창업 53년만에 사실상 공중분해되는 비운을 맞게 됐다. 해태그룹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채권은행들이 채권 회수를 위해 그룹해체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해태그룹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모기업인 해태제과 만큼은 살려줄 것을 채권은행들에 간곡히 요청해왔다.

특히 박건배 (朴健培)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해태제과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조치든 감수하겠다" 며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제출한 상태였다.

해태의 몰락은 무분별한 차입 경영을 지속해온데다 자구노력마저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다른 부실그룹들과 마찬가지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오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복병을 만나 자금난이 가중됐고 구조조정의 기회마저 놓침으로써 멸망을 자초한 셈이다.

뒤늦게 음료.유통 등 일부 계열사의 해외 매각을 추진했으나 부도기업이라는 약점 때문에 제값을 받을 처지가 못돼 협상이 지지부진해졌고, 그러다보니 자구노력이 '구두선 (口頭禪)' 에 그친 것이다. 해태의 공중분해는 계열사 부채를 그대로 떠안고 자산만 매각하는 방식이 이뤄지게 돼 그야말로 '빚잔치' 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해태제과.음료.유통 등 주력 3사를 일단 해태상사로 합병한 뒤 부채를 상사 한곳으로 몰았다가 나중에 자산매각대금으로 상환한다는 내용이다. 그래도 모자라는 금액에 대해선 은행도 채권 회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외국기업들이 부채 때문에 인수를 꺼리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산만 매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고 말했다.

한편 이날 채권은행의 발표를 계기로 주력 3사의 해외매각 작업도 급진전될 공산이 커졌다. 그동안 네슬레.코카콜라.펩시콜라 등 다국적 기업들이 해태음료.제과의 일부 사업에 대한 인수협상을 벌여왔으나 조건이 맞지않아 진전을 보지 못했다.이들 주력 3사의 매각대금은 제과 7천억원, 음료 5천억원, 유통 3천억원 등 모두 1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해태전자.중공업은 채권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한 뒤 계열에서 분리한다는 방침이나 결국 매각 쪽으로 결말이 날 전망이다. 해태 타이거즈의 경우 지역정서를 감안해 일단 유지 쪽으로 결정됐으나 모그룹이 해체되는 마당에 존립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타이거즈 주식을 1백% 갖고 있는 채권은행들은 인수희망 기업이나 개인이 나타나면 넘겨줄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운명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한편 朴회장은 일단 매각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룹에 남아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외에 매각되는 계열사 종업원들은 대부분 고용승계가 가능할 것으로 채권은행측은 내다봤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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