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겐 그저 의자이겠지만 나에겐 ‘행복한 추억’의 결정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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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나무로 뼈대를 짠 의자에 샴페인 코르크가 섬세하게 꽂혀 있다. 누가 무슨 일을 기념이라도 하기 위해 샴페인 코르크를 차곡차곡 모아둔 것일까? 의자에서 이야기가 흘러 나올 듯 하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34·계원디자인예술대학 겸임교수)씨의 작품 ‘코르크 앤 코르크 의자’다. 한씨는 “이 의자는 샴페인 코르크가 바닥과 등 부분에 다 채워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프레임을 제공한 디자이너와 코르크를 수집하는 사용자가 함께 만드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한씨는 “의자처럼 보이지만 가구라기 보다는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사진첩의 개념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씨가 샴페인 코르크 마개를 꽂아 만든 2인용 의자 ‘코르크 앤 코르크(Cork nCork)’. 한씨는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사진첩 개념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6월20일부터 7월18일까지 서울 청담동 가구전문 갤러리 ‘그미그라미’(02-548-7662)에서 열리는 한씨의 개인전 ‘모던 모놀로그’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독백이 나직하게 흐른다. 작가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가구를 추구해온 사진의 작품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옛날 집에서 뜯어온 나무로 만든 평범한 의자,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걸상. 한씨가 만드는 목물들은 자연을 닮았다. 최첨단 디지털 제품으로 가득한 현대생활 공간에서 그의 가구 디자인이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이런 ‘빈티지 룩’ 덕이기도 하다.

2003년 유학(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크랜부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두아트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활발한 전시활동을 해온 그녀의 대표작은 ‘두 사람을 위한 벤치’. 언뜻보면 마치 숲에서 그러모은 나무토막으로 만든 듯 전혀 꾸밈이 없어 보인다. 이 의자는 한씨가 대학 때 과제물로 디자인한 것으로 “동양적인 매력이 묻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문자판의 숫자가 바람에 흩날려 날아가듯 표현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유머러스하게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시계(‘Time Flies’) 부터 의자를 장식품처럼 달아놓은 선반(‘체어즈 온 더 월’), 가방을 걸어둘 수 있도록 등받이가 옆으로 돌출한 오리 모양 의자(‘오리’) 등도 눈길을 끈다.

한씨는 “‘체어즈 온 더 월’을 통해 의자가 벽 위에도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며 “창의적인 실험을 가미해 장식성이 높으면서도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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