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레이건 리더십 따라 배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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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민주당원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골수 공화당원이었던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나라에 정치를 뛰어넘는 정신, 즉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달 초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법’에 서명하는 자리에서다.

레이건이야말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더불어 작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의 수괴(?)가 아니던가.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레이건이 주창하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어받은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뒤집어엎고 뜯어고치느라 여념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책 면에서 보면 오바마와 레이건은 거의 상극에 가깝다. 찬사는커녕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는 것조차 마음속으로는 달갑지 않을 법하다. 그런 오바마가 자신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발목을 잡는 공화당의 영원한 심벌 레이건을 극진히 떠받들고 있으니 놀랍기 짝이 없다. 전직 대통령이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다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는가 하면, 다른 전직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라고 목청을 높이고,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그 전직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우리네 정치 풍토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바마가 새삼 레이건을 치켜세우는 것은 결코 그의 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레이건의 감세론과 ‘작은 정부론’엔 정면으로 반대한다. 레이건 시절에 시작된 금융산업에 대한 자유방임적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누구도 오바마가 레이건의 정책을 계승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레이건으로부터 넘겨받고 싶은 것은 바로 ‘통합의 리더십’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지지다. 레이건은 재임 시절은 물론이고 퇴임 이후에도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율은 재임 말기인 1988년 53%에서 퇴임 후인 2002년에는 73%까지 올라갔다. 이쯤 되면 미 국민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레이건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는 얘기다. 오바마가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또 간절히 원하는 것이 레이건이 받았던 것과 같은 국민적 지지다. 오바마는 국민 통합의 리더로서 성공한 레이건 대통령의 이미지를 끌어와 자신의 이미지에 중첩시키고 싶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오바마가 레이건으로부터 물려받고 싶어 하는 것은 레이건이 불러일으킨 ‘국민적 자신감’이다. 레이건은 냉전 종식 후 국제 정세의 불안 속에 자칫 정체성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던 미 국민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한껏 고양시켰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국민으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부추겼다. 오바마 역시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 미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레이건의 업적 가운데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와 국민적 사기(士氣)를 회복시킨 점’을 첫 손가락에 꼽은 것은 괜한 공치사가 아니다.

레이건이 개인적인 결점과 정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민 통합의 리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논쟁적인 메시지도 그의 친근하고 구수한 화법의 여과지를 거치면 국민에겐 감동의 울림으로 들렸다. 그는 비록 정책의 세세한 내용에는 무지한 경우가 많았지만 전달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또 한 가지 성공 요인은 그의 진정성이다. 레이건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책을 결정할 때 단 한 가지 기준에 따랐다고 한다. ‘양심이 가리키는 쪽을 택하라’. 이런 그의 판단 기준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국정 쇄신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정상회담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오바마가 열망하는 레이건의 통합 리더십도 덤으로 챙겨 왔으면 좋겠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