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이세돌, 선전포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제11보 (154~192)]
黑.안조영 8단 白.이세돌 9단

우상에 폭풍전야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표범 같은 이세돌이 백△로 칼끝을 들이대자 안조영은 흑▲로 피신했다.

그러나 아직 허리를 자르는 패가 남아있으며 백△가 궁극적으로 이 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결행의 시점이 언제일 것인가.

이세돌은 우선 154로 지켰는데 이 수가 팻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전쟁을 위해 무기를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전운이 짙게 감도는 가운데 두 사람의 고성능 컴퓨터가 총 가동되고 있다. 수 읽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문제는 계산이다. 패싸움이란 중간에 '흥정'이 이뤄지게 마련이다. 이때 판 구석구석의 모든 정보가 소상하지 못하면 계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잘못된 흥정과 함께 곧바로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진다.

안조영의 손쉬운 선택은 패의 부담이 워낙 크므로 그냥 이어주고 굴복하는 것이다. 외교협상이라면 이게 가장 무난해 욕먹지 않는 쪽일 것이다. 그러나 바둑은 승부가 바로 나기 때문에 엉터리 협상은 금방 들통난다.

155, 157로 간 수는 안조영이 버티기를 선택했음을 말해준다. 이 수는 '참고도' 흑1, 3의 끝내기를 엿보고 있다. 이세돌은 희미하게 냉소를 흘리며 160부터 팻감을 키운다. 그리고는 168, 170으로 끊어 곧장 공격을 개시했다.

긴 패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포탄 소리도 자주 들으면 자장가같다고 한다. 패싸움이 길어지면서 최초의 긴장은 사라지고 점차 죽고 사는 것조차 덧없어 보인다. (174.177.180.183.186.189.192는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